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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06
한자 黃登腰橋碑
영어공식명칭 Hwangdeung Yogyob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 1454-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은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80년연표보기 - 황등 요교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76년 1월 - 후지이 간타로 출생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09년~1911년 - 황등 요교비 발굴
보수|복원 시기/일시 1991년 - 황등 요교비 재건
현 소재지 황등 요교비 -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 1454-1 지도보기
성격 석비
양식 석비
재질
크기(높이, 너비, 두께) 120㎝[비석 세로]|20㎝[비석 가로]|20㎝[비석 깊이]|100㎝[좌대 세로]|120㎝[좌대 가로]|80㎝[좌대 깊이]
소유자 전북농지개량조합
관리자 전북농지개량조합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 있는 1780년경 황등제호 수리 내역을 적은 비.

[개설]

황등제호(黃登堤湖)요교호(腰橋湖)라고도 불리었다. 정읍 눌제, 김제 벽골제와 함께 호남의 3대 제호로 불렸다. ‘호남’이라는 지명이 황등제의 남쪽을 일컫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등제호는 호남의 관문 역할을 하던 호수였다. 하지만 1925년대부터 호수를 메워 농지로 만들기 시작하여, 1935년에는 호수가 사라지고 일대가 모두 농지로 바뀌었다.

1911년 발견된 황등호 황등요교비(黃登腰橋碑)는 1780년경 1,000정보에 이르는 황등제호의 제방이 무너지자 수리하고 내역을 적은 비석이다. 후지이 간타로[藤井寬太郞]가 1909년 임익수리조합을 조성하고, 1911년 황등제호를 보수하면서 호수 바닥에서 발굴하였다.

[건립 경위]

요교(腰橋)는 ‘허릿다리’라고 부르며, 제방의 중간인 황등면 황등리신용동 사이에 있으면서 갑문 역할을 하던 다리이다. 1911년 임익수리조합이 황등호를 보수하고 준설하면서 바닥에서 1780년 수리할 때 조성된 비를 발굴하였다. 1991년 전북농지개량조합에서 좌대를 설치하고 좌대 위에 비를 세웠다.

[위치]

황등요교비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 1454-1번지에 있다. 황등면 신용동과 황등리 사이의 제방 갑문인 요교 주변에 있다.

[형태]

황등 요교비는 네모 기둥 형태의 1면에 내역을 새긴 석비인데, 네모진 좌대 겸 해설을 적은 석좌대 위에 세웠다.

[금석문]

황등 요교비는 옛 비석과 좌대가 모두 석비이며, 모두 전면에 금석문이 새겨져 있다. 옛 비석은 1780년 당시 제방을 수리한 사항을 간단히 적었고, 1991년 재건한 좌대에는 발굴과 재건 과정을 자세하게 적었다.

[현황]

황등 요교비는 옛 비석을 새로운 좌대 위에 세우고 비석에 대한 해설까지 마쳐 보존 처리가 된 상태이다. 주변에는 황등제호황등 요교비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황등제호는 1937년 폐호되어 논으로 바뀌어 있는데, 요교비를 재건하면서 황등제호황등 요교비에 대한 안내판을 설치하여 역사적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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