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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오충렬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55
한자 三世五忠烈遺蹟
영어공식명칭 Samse-O-chungyeol Youjeog/Samse-O-chungyeolsa Shrin
이칭/별칭 삼세 오충신 유적,오충사,사충사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48-29[중신리 131-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681년연표보기 - 삼세오충렬유적 중 오충렬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1년 - 삼세오충렬유적 중 오충렬사 재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2년 - 삼세오충렬유적 중 오충렬 묘역 확장
문화재 지정 일시 1982년 8월 30일연표보기 - 삼세오충렬유적 전라북도 기념물 제6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삼세오충렬유적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현 소재지 삼세오충렬유적 -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48-29[중신리 131-5]지도보기
성격 사당|묘역
양식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관련 인물 오응정|오욱|오직|오방언|오동량
면적 11,018㎡
관리자 양승규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해주오씨 가문의 사당과 묘역.

[개설]

삼세오충렬유적(三世五忠烈遺蹟)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에 있는 해주오씨 오충신(五忠臣)의 무덤과 사당인 충렬사가 있는 곳이다. 충렬사에서는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오응정과 아들 오욱, 오직, 오동량과 오직의 아들 오방언 3대를 추향(追享)하고 있다. 오응정(吳應鼎)[1548~1597]은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전투에 참가하여 큰아들 오욱, 셋째 아들 오동량과 함께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실패하자 화약고를 터뜨려 두 아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둘째 아들인 오직(吳稷)[1574~1619]은 1619년 심하(深河)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오방언(吳邦彦)[?~1637]은 오직의 아들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전투를 이어 갔으나 인조가 항복하자 심하전투 때 전사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함을 한탄하며 한강에 투신하였다. 삼세오충렬유적은 1982년 8월 3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충렬사는 1681년(숙종 7) 건립되었다. 현재의 삼세오충렬사는 1978년 용안의 유림들이 발의하고 1981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지 2만 9800㎡[9,000평]에 오충렬사를 건립한 것이다. 1982년 묘역이 확장되면서 기념비와 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사당과 내삼문, 외삼문 등이 차례로 건립되었다. 현재 경내에는 관리사무소, 신위를 모신 사당, 유품과 유물을 전시한 영국관(寧國館)과 오공신도비(吳公神道碑)가 있다.

[위치]

삼세오충렬유적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 131-5에 있으며 표지석과 안내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형태]

삼세오충렬유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팔작지붕 형태의 충렬사가 있으며 기념관인 영국관, 그리고 신도비와 오응정의 묘, 정려각 등이 있다.

[현황]

삼세오충렬유적은 정문인 충신문을 지나면 외삼문인 복절문(伏節門)에 이르고 복절문 왼쪽에는 기념관인 영국관이 있다. 영국관에는 1593년(만력 21) 작성된 오응정의 교지와 의복, 기타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내삼문인 장의문(丈義門)을 지나면 여산 권갑석이 쓴 현판이 있는 삼세오충렬사가 있다. 중앙에 오응정, 왼쪽에 오동량과 오욱, 오른쪽에 오직오방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아들 오방언만 학이 새겨진 문관 의복을 착용하였다. 충렬사를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오공 신도비와 오응정의 묘가 있으며 현판을 보존한 정려각이 있다. 정려각에는 ‘삼자일손삼세오충(三子一孫三世五忠)’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길을 따라가면 오응정 세 아들의 비와 묘가 있다. 외삼문과 중삼문 사이에는 올림픽을 기념하여 조성한 숲이 있다. 삼세오충렬유적은 관리와 보존이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삼세오충렬유적은 해주오씨 충신 3대의 충절을 기리며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3대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의미가 깊은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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