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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15
한자 德川祠
영어공식명칭 Deokcheonsa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은기동 하두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덕천사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덕천사에서 덕천서원으로 승격
현 소재지 덕천사 - 전라북도 익산시 은기동 하두마을 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은기동 하두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사당.

[개설]

덕천사(德川祠)는 1931년 추강(秋岡) 오응현(吳應賢)[1550~1592]의 후손들이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1533~1592]을 주벽으로 모시고, 익산 지역에서 참전한 추강 오응현, 백천(栢川) 오응필(吳應弼)을 배향하였다.

고경명은 광주 출신으로 본관은 장흥(長興), 호는 제봉(霽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1558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며 1591년 동래부사가 되었으나, 서인의 실각으로 파직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한양이 함락되고 선조가 의주로 피신하자, 6,000명의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아들 고인후(高仁厚)와 함께 전사하였다. 의정부좌찬성에 추증하고 광주의 포충사(褒忠祠), 금산의 성곡서원(星谷書院)·종용사(從容祠), 순창의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하였다.

오응현은 호가 추강, 본관은 장흥이다. 왜란이 일어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동생 오응필, 오응철(吳應哲)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충청도 금산으로 나아갔다. 이어 이치전투에서 활약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동생들과 함께 순절하였으며, 왜란이 끝난 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권되었다.

[위치]

덕천사전라북도 익산시 은기동 하두마을에 있다.

[변천]

덕천사는 1931년 건립되었으며, 2010년 덕천서원으로 승격되었다.

[형태]

덕천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형태의 건물이다.

[현황]

덕천사는 건축물과 경내가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후손 오병학(吳炳學)의 희사로 20여 두락의 위토가 마련되어 있으며 음력 2월 중정에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모여서 향사를 한다. 사당 앞에 동서로 양재를 갖추었으며, 경내에는 덕천사 원정비(德川祠院庭碑)와 덕천사 묘정비(德川祠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덕천사는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충절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던 고경명,오응현, 오응필 등의 활약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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