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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16
한자 梅谷祠
영어공식명칭 Maegoksa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매곡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매곡사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4년 3월 - 매곡사에 윤봉길, 백정기 위패 배향
훼철|철거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매곡사 훼손
현 소재지 매곡사 -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매곡마을 지도보기
성격 사당
정면 칸수 3칸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매곡마을에 있었던 일제 강점기 사당.

[개설]

매곡사(梅谷祠)는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자결한 매하(梅下) 김근배(金根培)의 절의와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제자들과 아들 김종호가 1931년 세운 사당이다. 이후 1974년 3월 항일 독립운동가 윤봉길(尹奉吉) 의사와 백정기(白正基) 의사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으며, 매년 음력 3월 3일에 제사를 지내왔다.

김근배는 호가 매하(梅下),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익산 출신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고종 때 성균관박사를 지냈다. 강제로 한일합방이 되자 나라를 지키지 못한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다가 자손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우물에 빠져 목숨을 끊었다. 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되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윤봉길은 1908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서 1926년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1931년 김구(金九)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2년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린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장에서 수류탄을 던져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 등 여러 명을 죽이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에서 열린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순국하였다.

백정기는 1896년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서 어려서 정읍으로 이주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정읍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고, 봉천으로 망명한 이후 다시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서울 중부경찰서에 수감되었다. 1924년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고 도쿄에 갔다가 실패하였으며, 1925년에는 상하이로 가서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에는 중국 난징에서 열린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1932년에 백정기는 상하이에서 자유혁명자연맹[뒤에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BTP]이라 개칭]라는 항일 투쟁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러나 1933년 3월 17일 이강훈(李康勳), 이원훈(李元勳) 등과 함께 상하이 육삼정에서 일본대사 아리요시[有吉]를 암살하려고 모의하였으나 일본 헌병에 붙들려 일본 나가사키[長崎] 재판소로 옮겨졌으며, 무기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던 중 순국하였다.

[위치]

매곡사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매곡마을 현대아파트 4단지 부근에 있었다.

[변천]

매곡사는 1931년 사당이 건립되었으나 2010년 훼손되었다.

[형태]

매곡사는 정면 3칸의 사당, 동서 양쪽에 각각 정면 3칸의 서재와 동재가 있었다.

[현황]

매곡사는 2010년 배산택지개발과 함께 상가가 들어서면서 흔적이 없어졌다. 관련 유적인 김근배 유장비(遺庄碑), 매곡사 묘정비, 매곡사 창건비도 모두 유실되었다.

[의의와 평가]

매곡사는 일제 강점기 우국지사를 모신 사당으로,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 사라졌다. 조사 및 복원을 통해 애국지사 김근배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넋을 다시 기리도록 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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