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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36
한자 幀畵匠
영어공식명칭 Master Artisan of Buddhist Painting Skill Holder
이칭/별칭 불화장,화원,금어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5월 28일연표보기 - 이삼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7-2호 지정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종이나 천에 불화를 그리는 장인.

[개설]

탱화장(幀畵匠)은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불교 경전과 의궤에 따라 종이나 천에 불화(佛畵)를 그리는 장인을 말한다. 불화 제작을 담당하는 장인은 화원(畵員), 화공(畵工), 화사(畵師), 화수(畵手), 용안(龍眼), 존숙(尊宿), 편수(片手), 금어(金魚)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탱화장을 지칭하는 말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된 용어는 화원이다. 화기(畵記)를 적는 서식이 갖추어진 조선 전기 이후의 불화에는 그림을 그린 화원[화가]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화원과 함께 금어라는 명칭이 많이 사용되었다. 금어는 보살초, 천왕초, 여래초 등 9,000여 장을 그리는 과정을 수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호칭이자 화승 중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로, 10여 단계에 이르는 단청 작업에 종사하는 채공(彩工)들을 지휘하였다. 18세기에는 수석 화사를 금어라고 부르고 금어 밑에서 작업하는 보조 화사는 편수라 하였으며, 편수 중 우두머리를 도편수(都片手), 도편수 아래를 부편수(副片手)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9세기 이후에는 금어가 화승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연원 및 변천]

삼국 시대에 불교가 전래되고 불화가 제작된 이래 불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승과 화승 집단도 다양하게 존재하였을 것이나 현재 기록에 의하여 확인되는 화승은 고구려의 담징(曇徵)과 일본에서 활동하였던 산배화사(山背畵師), 황문화사(黃文畵師)[기부미노 화사] 등에 불과하다. 통일신라 시대의 화승으로는 솔거(率居)를 비롯하여 정화(精和), 홍계(弘繼) 등이 알려져 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번창함에 따라 불화가 많이 조성되었으므로 화승의 역할도 커졌다. 현재 고려 시대의 화승은 20여 명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전국의 사찰에 봉안하는 수많은 불화를 그렸던 화승은 이보다도 훨신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대표 화승으로는 14세기 전반에 활동한 노영(盧英)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조선 초부터 강력한 억불 정책으로 모든 불사가 위축되면서 불화의 제작이 줄어들었다. 현재 조선 전기 불화의 화기에 언급된 화승은 약 50여 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15세기의 화승으로는 해련(海蓮)이 유일하며, 16세기 화원으로는 혜훈(惠薰)이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는 전란으로 파괴된 사찰이 중창, 중건되면서 불화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조선 전기와 달리 화승들은 도화사라 불리는 우두머리 화승의 지휘에 따라 적게는 1~3명,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기까지 집단을 이루며 불화를 제작하였다. 18세기에 활동한 의겸(義謙)과 같은 화승은 화승 집단을 결성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을 무대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탱화장들 사이의 화법 전수는 주로 사찰 내에서 이루어졌고 대체로 한 스승의 문하에서 화법을 전수받았다.

[불화 제작 법식 및 제작 과정]

불화는 불탑(佛塔) 및 불상(佛像) 등과 함께 불교의 신앙 대상으로 형태에 따라 탱화(幀畵), 경화(經畵), 벽화(壁畵)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탱화는 복장식(服裝式), 점안식(點眼式) 등의 신앙 의식 절차를 거쳐 불단(佛檀)의 주요 신앙 대상물로 봉안된다. 불화는 종교화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불화를 그릴 때는 바탕이 되는 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그림 그리는 시기와 장소를 물색하는 일, 마음가짐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법식과 계율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불화를 그리는 법식은 『일자불정륜왕경(一字佛頂輪王經)』과 『불공견삭신변진언경(不空羂索神變眞言經)』,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 등 주로 밀교 계통의 경전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불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목욕재계하고 팔계재를 지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불화를 그리는 시기는 신통한 달인 정월 5일, 9월 초하루[1일]와 보름[15일]으로 하고, 불화를 그리는 장소는 불당전(佛堂殿)이나 산간의 선인굴(仙人窟)에서 하되 사방 100보 안쪽으로 모든 더러운 냄새나는 물을 없애고 벌레도 없애 청결히 하며, 불화를 그리는 바닥은 매일 법대로 향수를 뿌려야 한다고 한다.

불화는 전통적으로 채색화로 조성되기 때문에 다양한 안료를 사용하여 제작한다. 최근에는 값싼 화학 안료를 쓰기도 하지만, 전통 불화에서는 주로 광물질 안료인 석채(石彩)와 동물성 또는 식물성 안료를 사용하여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채란 천연 광석을 채취하여 곱게 가루 낸 뒤 물로 여러 번 수비(水飛)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채도가 높은 입자만을 선별하여 만든 안료이다. 석채는 변색하지 않으며 발색도 좋기 때문에 고급 안료로 취급되어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렇지만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이 워낙 비싸 쉽게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석채와 거의 같은 성분이면서 천연 흙 종류를 분쇄하고 수비하여 만든 분채(粉彩)는 가격이 저렴하고 발색도 좋아 불화 안료로 많이 사용한다.

불화의 제작 과정은 초내기, 배접, 아교포수, 바탕칠, 채색순으로 진행된다. 초내기는 그리고자 하는 탱화의 주제에 맞춰 연필과 목탄 등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배접은 초본이 완성되면 하는 기법이다. 배접 방법은 종이 바탕과 천 바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천 바탕의 경우, 바탕이 되는 천의 표면에 물을 발라 배접판에 붙이고 그 위에 풀을 발라 초본을 뒤집어 붙인다. 그리고 초본 위에 풀을 발라 배접지를 붙이고 다 마르면 떼어 내서 뒤집은 뒤 테두리에만 풀을 붙여 배접판에 붙이고 물을 뿌려 팽팽해지면 완성된다. 종이 바탕의 경우 초본에 물을 묻혀 배접판에 뒤집어 붙이고 두세 번 정도 배접지를 풀칠하여 바르면 배접이 완성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배접판에 물을 묻혀 배접지를 붙인 뒤 풀을 칠하고서 그 위에 초본을 똑바로 하여 붙이고 바탕이 되는 천을 붙여 말리는 것으로 배접이 완성된다.

[호남 지역의 탱화장]

전라북도에서 활동하는 탱화장으로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7-2호[2010년 5월 28일 지정] 이삼열(李三烈)이 있다. 이삼열은 1945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963년 탱화를 처음 접하였고, 김제 부용사에서 승려 금용 김일섭을 만나 본격적으로 탱화를 수학하였다. 50여 년간 제작한 대표 작품으로는 부산 동래포교당의 후불탱화를 비롯하여 수덕사 대웅전의 신중탱화, 칠성탱화, 불국사 극락전과 불국사 비로전의 후불탱화가 있다. 그 밖에도 전국의 주요 사찰 단청과 불화 조성에 참여하였다. 이삼열의 작품은 밑그림 도상을 충실히 하고 인물 표현 능력이 탁월하고 필력과 채색 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그 밖의 탱화장으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3호 송복동[1998년 사망]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1호 고재석[2005년 사망]이 지정되었으나, 당사자가 사망함에 따라 지정 해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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