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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유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54
한자 『梅下遺稿』
영어공식명칭 Maehayug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매하유고』 저술
편찬 시기/일시 1946년연표보기 - 『매하유고』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47년연표보기 - 『매하유고』 간행
소장처 고려대학교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종암동 1-16]
소장처 영남대학교 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조영동 214-1]
성격 시문집
저자 김근배
편자 김종호
간행자 김종호
권책 5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6.6×18.8㎝
어미 상하향2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매하유고
판심제 매하유고

[정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개항기 문인 김근배의 시문집.

[개설]

『매하유고(梅下遺稿)』는 1910년 국권피탈에 항거하여 자결한 매하(梅下) 김근배(金根培)[1847~1910]가 쓴 글을 5권 2책으로 묶어 1947년에 간행한 책이다. 김근배의 시와 글, 사상과 행적,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자료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경상북도 경산시 조영동에 있는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김근배는 본관이 김해(金海)로, 자는 광원(光元), 호는 매하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출신으로, 조옥승(曺玉承)에게 수학하였으며, 성균관 박사를 지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의병을 일으키고자 토적의거격문(討賊義擧檄文)을 썼다. 1910년 국권피탈 후 일본 정부에서 김근배를 회유하고자 은사금(恩賜金)을 보내자 이를 거부하고, 전라도 지역의 나주, 김제, 옥구 등에서 청장년들을 모아 항일투쟁을 벌이다가 1910년 12월 13일 돌을 몸에 매고 샘에 빠져 자결하였다. 저서로는 『매하유고』 인쇄본 4권 2책이 전해지고 있다. 건국유공자로 표창장과 대통령표창장을 받았다. 아들 김종호(金種昊)가 1931년 매곡사(梅谷祠)를 사당으로 건립하였고, 1963년 대통령 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아들 김종호가 1943년 1월 오진영(吳震泳)의 서문과 1945년 12월 소학규(蘇學奎), 송기면(宋基冕)의 서문을 받아서 1947년 3월 하순에 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5권 2책의 석판본이다. 책의 사주(四周)에 두 개의 검은 선이 돌려진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며 본문의 각 줄 사이를 계선(界線)으로 구분하고 있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20.6×15.6㎝, 10행 20자, 주는 쌍행이고 어미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책 크기는 26.6×18.8㎝이다.

[구성/내용]

책의 첫머리는 소학규(蘇學奎), 오진영(吳震泳), 송기면(宋基冕)이 지은 서문이며, 권1과 권2는 저자의 시문(詩文)이며, 권3, 권4, 권5는 부록이다.

권1은 1889년 지은 칠언율시 「제극경재(題克敬齋)」부터 저자가 1910년 은사금을 내린 것을 받지 않고 자결하면서 남긴 칠언고시 「회석투정(懷石投井)」 등 서른일곱 수가 수록되어 있다. 서당이나 누정의 계절 풍경, 벗이나 가족 등에게 보내는 시, 단발령이나 유학의 쇠퇴를 탄식하고 우국충정을 노래한 시 등이 주로 많다.

권2에 수록된 내용은 먼저 서(書) 다섯 편으로, 주로 김근배가 함께 교유하였던 인물들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 상황과 나라를 걱정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경전과 처신하는 도리에 대해 논하기도 하였다. 특히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에게 보낸 편지가 일곱 통 있는데, 1901년부터 아들들을 보내어 수학하게 한 것을 비롯해서 1910년 타계할 때까지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정수(李正洙)에게 저자의 성리학과 예학(禮學), 시국과 유생의 처신에 대해 보낸 편지도 아홉 통 실려 있고, 세 아들에게 보낸 편지도 여러 통 수록되었다.

그다음으로는 서(序) 세 편, 기(記) 한 편, 발(跋) 두 편, 설(說) 세 편, 논(論) 세 편, 제문(祭文) 네 편, 묘표(墓表) 한 편, 행장(行狀) 두 편, 가장(家狀) 한 편이 이어지는데, 서·기·논은 저자의 해박한 학문과 문장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고, 가장인 「선고가장초(先考家狀抄)」에는 부친인 김현교(金顯敎)의 효행과 종족 간의 우애, 저자를 공부시키려고 노력하였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은 잡저(雜著)로서 서당의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글, 외손자에게 농사에 힘쓰기를 당부한 글 등이 실려 있고, 특히 1910년 나라를 빼앗긴 것을 통탄하고 욕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으로써 충효와 의리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밝히고 후인들에게는 경서(經書) 공부에 힘쓰고 농사지으면서 때를 기다리기를 당부하는 유언도 실려 있다.

권3은 김근배와 교유한 인물이 보낸 제문 열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4는 전우 등 174명이 보낸 만사(挽辭), 두 편의 애사, 찬(讚) 한 편, 소학규(蘇學奎)가 지은 「매곡사 상량문(梅谷祠上梁文)」, 오진영(吳震泳)이 지은 「매곡사 봉안 축문(梅谷祠奉安祝文)」, 송병관(宋炳瓘)이 지은 「매곡사 춘추향 축문(梅谷祠春秋享祝文)」, 임병룡(任秉龍)이 지은 「매곡사기(梅谷祠記)」가 수록되어 있다. 「매곡사기」는 김근배가 순절한 후 고을의 인사들이 제사를 지내 오다가 1931년 매곡사를 지은 경위를 밝히고 있다.

권5는 1914년 김하용(金夏容)이 지은 김근배의 행장과 같은 해 송병화(宋炳華)가 지은 묘지(墓誌), 1920년 김영한(金寧漢)이 지은 묘갈명(墓碣銘), 그리고 저자의 어록(語錄), 아들 김종호가 지은 유사(遺事), 「퇴계선생서절요목록(退溪先生書節要目錄)」, 제가(諸家)들이 보낸 서간 19편, 해방 후 집안 제사 때의 고유(告由)한 글, 『매하유고』를 완성할 때 고유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은 1947년 3월 김종호가 지은 발문이다.

[의의와 평가]

『매하유고』김근배의 생애와 사상, 교유 관계, 절의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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