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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95
한자 鶴谷集
영어공식명칭 Hakgokjip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653년연표보기 - 『학곡집』 편찬
간행 시기/일시 1706년연표보기 - 『학곡집』 간행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집
저자 홍서봉
편자 홍명일
간행자 홍구채[중간본]
권책 11권 4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9.2×17.8㎝
어미 상하향 흑어미(上下向黑魚尾)
권수제 학곡집
판심제 학곡집

[정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홍서봉의 시문집.

[개설]

『학곡집』은 조선 후기인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인 홍서봉(洪瑞鳳)[1572~1645]의 시문집이다. 전라도 익산군 출신인 홍서봉은 광해군 때의 무옥(誣獄)[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죄가 있는 것으로 꾸며 가두거나 징벌함] 사건과 관련하여 파직된 이후 한때 은거하였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일으켜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 『학곡집』은 문장과 시로 이름을 떨친 홍서봉의 시와 문장, 행적을 잘 알려 주고 있다. 특히 1권부터 6권까지 모두 시로서,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 배율, 고시, 과체시 등 여러 시체에 저자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1706년 간행한 운각활자본(芸閣活字本)으로 원집 9권, 부록 2권 합 4책과 간행 연도를 알 수 없는 목판본으로 8권 3책이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두 판본 모두 초간본을 보충한 중간본이다.

[저자]

홍서봉은 자는 휘세(輝世), 호는 학곡(鶴谷),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도승지 홍천민(洪天民)과 어머니 고흥유씨(高興柳氏) 제용감주부 유당(柳摚)의 딸 사이에서 1572년 태어났다. 세 살 때 부친상을 당하자 막내 작은아버지 익성군(益城君) 홍성민(洪聖民)이 돌보아 주었고, 1588년부터는 장인 황혁(黃赫)에게서 수학하였다. 1590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94년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정자로 관직에 나갔다. 성균관전적, 이조좌랑을 거쳐 1604년 성주목사가 되었으며, 1608년에는 사가독서(賜暇讀書)[유능한 젊은 문신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도록 하는 제도]에 선발되었다. 1609년 강원도관찰사, 1610년 동부승지, 예조참의를 거쳐 성절사로 연경에 다녀왔다. 그러나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으로 장인인 황혁이 파직되자 이후 세상에 뜻을 끊고 은둔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의 혼탁한 정치가 심해지자 김류(金瑬), 신경진(申景禛), 구굉(具宏) 등과 도모하여 1623년 인조반정을 일으켜서 병조참의가 되고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으로 익녕군(益寧君)에 봉하여졌다. 1628년에는 유효립(柳孝立)의 모역을 고변하여 영사공신(寧社功臣) 2등이 되고,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이후 좌우참찬, 이조판서, 병조판서, 대제학을 두루 거쳐 1636년에는 우의정에서 좌의정으로 승진하였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며, 화의책을 건의하였다. 1637년 모친상을 당하자 상을 마치고 1639년 영의정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1645년 소현세자가 죽자 원손(元孫)을 책봉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1645년 8월 병으로 타계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홍서봉은 문장과 시에 뛰어나 당대에 널리 이름을 날렸다. 홍서봉이 타계한 후 아들 홍명일(洪命一)이 부친의 글을 수집·정리하였으며, 이어 용안현감 박승건(朴承健)과 외손 박세주(朴世柱)가 이경석(李景奭)의 서문을 받아 1653년 무렵에 간행하였다. 그러다가 초간본의 목판이 화재로 소실되자, 증손 홍구채(洪九采)가 내용을 추가하여 1706년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1736년에는 현손(玄孫) 홍응몽(洪應夢)이 성주목사 때에 중간본을 다시 간행하기도 하였다.

[형태/서지]

1706년 간행된 운각활자본을 보면 책의 테두리에는 아래위로 한 개, 좌우로 두 개의 검은 줄이 쳐 있는 상하 단변(單邊), 좌우 쌍변(雙邊)이다. 반곽은 21.4×13.2㎝. 10행 20자이며, 주는 쌍행이다. 판심은 상하향 흑어미(上下向黑魚尾)이며, 크기는 29.2×17.8㎝이다.

[구성/내용]

『학곡집』 운각활자본은 원집(原集) 9권, 부록(附錄) 2권, 도합 11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는 이경석(李景奭)이 지은 서문이며, 권1부터 권6까지는 시, 권7부터 권9까지는 문(文)인데, 각 권마다 목록이 맨 앞에 수록되어 있고, 보유(補遺)가 포함되어 있다. 시는 형식별로 구분되어 있고, 대체로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남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따서 짓는 차운시(次韻詩) 또는 이별의 증표로 짓는 증별시(贈別詩)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권1은 오언절구 147수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제고씨화보(題顧氏畫譜)」는 중국의 화가 고개지(顧愷之)로부터 마수진(馬秀眞)까지 108명에 대하여 시를 읊은 것이다. 권2는 칠언절구 145수가 수록되어 있다. 원접사(遠接使) 수행 때 지은 차운시와 호란 때에 지은 시, 만사(輓詞)가 많다. 권3은 오언율시 90수, 오언배율 4수가 수록되어 있다. 원접사 때의 차운시와 만사가 많다. 권4는 칠언율시 143수,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 천장(遷葬) 때에 지은 만사인 칠언배율 1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5는 오언고시 13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6은 칠언고시 19수, 만시 1수, 자손들에게 보여 주려고 수록한 과체시(科體詩)[과거 시험에서 쓰이던 시] 「수별류후마시랑(酬別留後馬侍郞)」, 그리고 이안눌(李安訥)의 「제학곡시후(題鶴谷詩後)」가 있다. 이안눌은 홍서봉의 시가 황정욱(黃廷彧)이나 최립(崔岦)과 견줄 만큼 뛰어나다고 극찬하였다.

권7은 소차(疏箚) 22편, 계사(啓辭) 2편, 헌의(獻議)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차 22편은 병조판서부터 영의정까지 제출한 사직소 10편과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사직소부터 영의정을 12번 사직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자 올린 진정소(陳情疏)까지 12편이다. 권8은 신도비,묘갈명, 묘지명 등이다. 신도비는 2편, 묘갈명 7편, 묘지명은 2편이다. 권9는 제문, 응제문, 과표(科表)이다. 제문은 3편, 응제문은 보유를 합하여 6편, 과표는 1편이다.

부록은 두 권인데, 상권은 외증손 박태순(朴泰淳)이 지은 행장, 오도일(吳道一)이 지은 시장(諡狀), 김수항(金壽恒)이 지은 묘표(墓表)가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교서(敎書) 2편, 사제문(賜祭文) 한 편, 제문 9편, 김류(金瑬)와 김상헌(金尙憲)이 보낸 만사 두 편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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