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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639
한자 崔敬止
영어공식명칭 Choi Kyungji
이칭/별칭 화보(和甫)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60년 - 최경지 별시 을과 1위로 과거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64년 - 최경지 병조좌랑으로 재직 중 파직
활동 시기/일시 1466년 - 최경지 지평으로 관직 복귀
활동 시기/일시 1475년 - 최경지 봉상시부정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76년 - 최경지 문과 중시에서 2등 3위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479년 - 최경지 부제학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479년연표보기 - 최경지 사망
출생지 황등 -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 부제학

[정의]

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가계]

최경지(崔敬止)[?~147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화보(和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홍재(崔弘載)이고, 할아버지는 최호(崔灝)이다. 아버지는 세자시강원필선을 역임한 최유종(崔有悰)이며, 어머니는 허조(許稠)의 딸 하양허씨(河陽許氏)이다. 부인은 채담(蔡潭)의 딸 평강채씨(平康蔡氏)이다.

[활동 사항]

최경지는 지금의 익산시 황등면에서 태어났다. 1460년(세조 6)에 별시 을과 1위로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이 되었으며, 1462년에 있었던 경연에서 뛰어난 강론을 펼쳐 품계를 올려 받기도 하였다. 1464년 병조좌랑에 재직 중일 때 사헌부로부터 관리의 인사발령을 기록한 문서인 비목(批目)을 서리에게 위임시켜 밖으로 나돌게 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466년에 다시 지평으로 복직되어 발영시(拔英試)에서도 3등 22위로 합격하였다.

최경지는 예종 대에도 예문관전한, 부응교 겸 경연시강관을 거쳐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1475년(성종 6)에 봉상시부정이 되었으며, 이듬해 열린 문과 중시에 또 2등 3위로 합격하였다.

1477년에는 중국 남송 때 제작된 음악 이론서로서 조선 시대 아악 정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율려신서(律呂新書)』를 학습할 문신으로 선임되었다. 1479년 홍문관직제학으로 있을 때에는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의 폐위에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부제학으로 승진한 뒤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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