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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651
한자 李純仁
영어공식명칭 Lee Soonin
이칭/별칭 백생(伯生),고담(孤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류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3년연표보기 - 이순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64년(명종 19) - 이순인 생원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572년(선조 5) - 이순인 별시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83년 - 이순인 종부시정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86년 - 이순인 사간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이순인 사망
출생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수학지 성균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31[명륜3가 53]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의(全義)
대표 관직 우참찬

[정의]

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가계]

이순인(李純仁)[1543~1592]의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자는 백생(伯生), 호는 고담(孤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석동(李碩童)이고, 할아버지는 이사겸(李思謙)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홍(李泓)이며, 어머니는 생원 박함(朴諴)의 딸 죽산박씨(竹山朴氏)이다. 부인은 우참찬 김개(金鎧)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활동 사항]

이순인은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한 뒤에 1565년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성균관생원으로 있을 때 여러 생도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요승(妖僧) 보우(普雨)를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여 임금이 왕명을 내려 보우를 내쫓게 하였다. 1570년에는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일두(一蠧) 정여창(鄭汝昌),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순인은 157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예문관검열·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사간원정언을 거쳐 병조좌랑·홍문관교리·사헌부지평·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사간원사간으로 있을 때 재상의 뜻에 거슬렸다는 이유로 사직하였다. 1583년에 관직에 복귀하여 종부시정을 거쳐 직제학에 이르렀으나 대간의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 1586년 다시 사간에 임명된 이후 부승지, 형조참의, 승문원 제조 등을 지내다가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도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호종하다가 1592년 황해도 성천에서 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순인의 저서로는 5권 2책의 문집인 『고담일고(孤潭逸稿)』가 있다. 이순인은 당시 이산해(李山海),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 등과 함께 ‘8문장(八文章)’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다.

[상훈과 추모]

이순인은 1604년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이조참판이 증직되고 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613년에는 이조판서가 증직되었으며, 갈충진성위성공신(竭忠盡誠衛聖功臣)에 녹훈되고 전릉군(全陵君)에 봉하여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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