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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32
한자 趙載榮
영어공식명칭 Jo Jaeyoung
이칭/별칭 춘파(春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상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조재영 익산에서 항일 의병 봉기
활동 시기/일시 1908년 1월 - 조재영 익산에서 일본군에게 패전
몰년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조재영 사망
출생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거주|이주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활동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성격 항일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장.

[활동 사항]

조재영(趙載榮)[?~1909]은 익산 출신으로, 호는 춘파(春坡)이다. 1908년 둘째 아들인 조승호(趙承鎬)와 함께 익산에서 항일 의병을 일으켰다.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민종식(閔宗植)이 패전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자, 조재영은 민종식 부대의 의병 40여 명을 모아 의전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익산의 이규홍(李圭弘), 임실의 이석용(李碩庸), 무주의 문태서(文泰瑞), 고산의 유지명(柳志明), 청주의 신명선(申明善), 공주의 노인섭(盧仁燮) 등이 이끄는 의병들을 규합하여 도지휘(都指揮)가 되었다.

이후 1909년 1월 용담(龍潭) 대불리(大佛里)[현 진안군 주천면 서쪽]에 모여 훈련하던 연합 의진 1,500여 명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패전하였다. 1909년 병세가 깊어져 집으로 돌아온 조재영은 둘째 아들 조승호에게 계속 투쟁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3(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호남기록문화유산(http://www.memoryho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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