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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39
한자 張京春
영어공식명칭 Jang Kyungcho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상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연표보기 - 장경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4일 - 장경춘 오산면 만세 시위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19년 4월 4일연표보기 - 장경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장경춘 대통령표창 수훈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장경춘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출생지 남전리 -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남전리 -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지도보기
활동지 오산면 -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장경춘(張京春)[1887~1919]은 1887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장경춘문용기(文容基)·박도현(朴道玄) 등과 함께 4월 4일 이리 장날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기독교인과 학생 등 200여 명으로 시작된 만세 시위는 장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1,0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중으로 불어났다.

일본군은 수백 명의 소방대원과 일본 농장원을 동원하여 칼과 곤봉, 갈퀴 등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해산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이끌던 장경춘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장경춘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을,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김승학, 『한국독립사』(독립문화사, 1965)
  • 『익산시사』3(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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