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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236
한자 月末通信
영어공식명칭 Wolmaltongsin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서덕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28년 5월 31일[음력]연표보기 - 『월말통신』 창간
폐간|종간 시기/일시 1930년 12월연표보기 - 『월말통신』 발간 중단
속간 시기/일시 1932년 5월연표보기 - 『월말통신』에서 『월보』로 개칭
폐간|종간 시기/일시 1933년 6월연표보기 - 『월보』 폐간
성격 월간 잡지
관련 인물 박중빈|송도성|전음광
발행인 전음광
판형 사륙배판[묵사본]
총호수 총 48호[『월말통신』 34호|『월보』 14호]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에서 불법연구회가 발행한 월간 잡지.

[개설]

『월말통신』은 음력으로 1928년 5월 31일 불법연구회가 창간한 월간 잡지다. 불법연구회는 1924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전라북도 익산에서 세운 원불교 초기 조직 이름이다. 『월말통신』은 초기에는 주로 박중빈의 법설 요지와 정기 모임에 대한 기록, 각종 소식, 본관의 전달 사항과 지부의 근황 등을 알리는 내부 소식지 역할을 하였다가, 발간을 거듭하면서 기관 잡지로 발전할 것을 도모하였다. 1932년 5월 제호가 『월보』로 바뀌었고 1933년 6월에 『월보』 제48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창간 경위]

1928년 당시 교당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의 연구부 서기 송도성이 발의하고 초대 총재 박중빈이 승인하여 창간하였다.

[형태]

매월 발간된 잡지인 『월말통신』의 창간호는 20쪽 분량의 사륙배판 묵사본으로 발간되었다. 발간 초기에는 묵사본이었기에 호당 다섯 부 정도밖에 얻지 못하였고, 1932년 제호를 『월보』로 바꾸면서부터는 전음광을 발행·편집인으로 등록하고 프린트본 50여 부를 간행하였다.

[구성/내용]

『월말통신』은 1928년 당시 전국에 산재한 3개 교당[영상, 경성, 본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창간되었다. 『월말통신』의 창간을 제안하였던 송도성은 “법설과 감각건 혹 처리건을 간단히 1편식 기재하고 예회록과 인사동정 소식과 본관의 근황을 명료히 기재하여 매월 말 1회씩 각 지부 출장소에 발송하여 당지 회원에게 소개하도록” 하자는 취지를 밝혔다. 『원불교대사전』에서는 “『월말통신』 하나만 가지고도 세 곳의 지부에서는 예회를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었고, 예회 식순 중에 『월말통신』을 낭독하는 시간도 두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월보』로 제호를 바꾼 다음부터는 기관 잡지로서의 성격을 좀 더 분명히 하여, 기존 내용에 더하여 광고, 문예 작품까지 실었다.

[변천과 현황]

음력으로 1928년 5월 31일 창간한 『월말통신』은 1930년 12월까지 총 34호를 발행하고 발간을 중단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32년 5월 제호를 『월보』로 바꿔 복간하였다. 1933년 6월에 발간한 제48호는 출판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일제 당국에 압수당하였고 이를 계기로 『월보』가 폐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월말통신』원불교 최초의 정기간행물로서 원불교 역사에 큰 의미가 있는 사료이다. 창간호에는 초대 총재 박중빈의 법설 ‘약자로 강자 되는 법문’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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