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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탑의 건립」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319
한자 王宮塔-建立
영어공식명칭 The Construction of a Royal Palace Tower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시대 고대/남북국시대/후백제,현대/현대
집필자 박세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 「왕궁탑의 건립」 익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익산시사』에 수록
관련 지명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견훤|도선
모티프 유형 풍수담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지역에 전하여 내려오는 왕궁탑 건립과 관련된 이야기.

[개설]

「왕궁탑의 건립」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일명 왕궁탑(王宮塔), 곧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益山 王宮里 五層石塔)의 건립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왕궁면 왕궁리 일대는 마한 기준(箕準)의 도읍설, 백제 무왕(武王)[?~641] 천도 및 별도설, 안승(安勝) 도읍설, 후백제 견훤(甄萱)[867~936] 도읍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하여지는 곳이다. 이렇게 무성한 이야기가 살아 있는 옛 궁궐터 한가운데에 왕궁탑이 자리하고 있다.

『익산시사』에 수록된 「왕궁탑의 건립」은 견훤이 왕궁탑을 세우게 된 경위에 관한 이야기다. 견훤은 신라 말기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889년에 무진주(武珍州)[지금의 광주광역시]를 점령한 뒤, 892년에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900년에 완산주(完山州)[지금의 전주시]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후백제(後百濟)’라 선포하면서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다. 한때 왕건(王建)[877~?]과 패권을 다툴 만큼 위세가 있었으나,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아들들과 정치적으로 크게 대립하다가 결국 935년에 왕건에게 투항하였다. 936년 왕건을 도와 후백제를 패망시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생을 마쳤다. 재위 기간도 짧고 말년이 비운으로 점철되기는 하였으나, 한 국가를 경영한 왕이었기 때문에 견훤의 탄생이나 행적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전하여지고 있다. 「왕궁탑의 건립」은 견훤이 후백제의 왕으로서 왕건과 정치적 긴장 관계에 있을 때 이루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왕궁탑의 건립」은 2001년에 익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익산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후백제의 왕 견훤이 어느 날 당시의 유명한 대사 도선(道詵)[827~898]을 만나 어떻게 하면 왕건을 누르고 후백제가 영성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도선이 대답하되, 완산의 지리가 마치 개가 웅크리고 앉은 형세[若蹲狗形]이니 지세를 이용하면 될 것이라 하였다.

그러자 왕이 “어찌하면 좋소?” 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물었다.

도선이 대답하길, “웅크리고 앉은 개의 꼬리를 눌러 놓으면 개가 일어서지 못할 게 아니옵니까?”라고 하였다.

견훤은 도선과 상의한 결과 개의 꼬리 부분이 되는 땅에 무거운 석탑을 쌓기로 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왕궁탑을 쌓게 되었다. 왕궁탑이 완성된 지 사흘 동안 완산이 대낮에도 캄캄해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왕궁탑의 건립」에서는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인 도선의 풍수담(風水談)이 서사 전개의 중요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풍수는 땅에 대한 이치를 체계화하여 인간의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을 점치는 행위이다. 도선은 풍수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왕궁탑의 건립」은 도선이 완산의 지세(地勢)를 살핀 후 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계책을 알려 주자, 견훤이 그 일환으로 왕궁탑을 쌓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도선의 계책이 오히려 견훤을 궁지에 빠트리고 있다. 도선의 조언에 따라 탑을 쌓았는데, 완산이 사흘 동안이나 온종일 캄캄하여졌기 때문이다. 왕궁탑 건립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에서는 도선이 도운 대상이 견훤이 아니라 왕건으로 나오고 있어, 다양한 각도에서 왕궁탑 건립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왕궁탑을 건립한 주체가 견훤일 수도 있고, 혹은 왕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왕궁탑의 건립이 한 나라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만큼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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