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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이 태를 묻었다는 태봉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325
한자 箕準-胎-胎峯山
영어공식명칭 Mount Taibong, Where KiJun Buried the Placent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현대/현대
집필자 한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 「기준이 태를 묻었다는 태봉산」 익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익산시사』에 수록
관련 지명 태봉사 -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347-23[연동리 산147]지도보기
관련 지명 태봉산 -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기준|청송심씨
모티프 유형 태봉산태봉사의 유래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기자신앙과 관련된 이야기.

[개설]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에는 태봉산(胎峯山)이 있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箕準)은 위만(衛滿)에게 고조선을 빼앗기고 남하하여 마한(馬韓)을 세운다. 그러고 나서 태봉산에 자신이 낳은 세 아들의 태(胎)를 묻었다. 태봉산(胎峯山)은 현재 ‘태봉사(胎峯寺)’라는 절이 들어서 있다. 태봉사는 과거부터 기자(祈子)를 위한 치성 장소이기도 하였다.

[채록/수집 상황]

「기준이 태를 묻었다는 태봉산」은 2001년에 익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익산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태봉사는 대한불교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태봉사 근처에서 발견된 삼존석불(三尊石佛)은 백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태봉사 주지의 생모인 청송심씨(靑松沈氏)가 약 70년 전에 삼대독자인 아들[태봉사 주지]의 수명장수(壽命長壽)를 기원하기 위하여서 산신(山神) 기도를 올리던 중, 산신이 현몽하여서 삼존석불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청송심씨는 삼존석불을 발견한 곳에 작은 불당을 지었으며, 1957년에 대웅전을 다시 짓고 삼존석불을 봉안하였다. 이 이야기가 현재 태봉사의 유래가 된다.

기준은 고조선을 위만에게 빼앗긴 뒤 가족과 신하를 데리고 남하하여 한(韓)에 정착한다. 기준이 세운 나라가 마한(馬韓)이다. 기준은 세 명의 아들을 낳고, 아들들의 태를 현재의 태봉산(胎峯山)에 묻었다. 태봉산은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아들을 얻기 위하여서 치성을 드린 장소였다.

[모티프 분석]

산신, 삼신(三神), 숫자 3은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아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들을 낳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민간신앙에 기대기도 하였다. 이를 기자신앙(祈子信仰)이라 한다. 「기준이 태를 묻었다는 태봉산」은 익산 지역의 대표적인 기자 신앙처인 태봉산태봉사의 유래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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