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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양곡 소세양과 곤암 소세량」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331
한자 孝子陽谷蘇世讓-困菴蘇世良
영어공식명칭 Yanggok Soseyang and Gonam Soseryang, the Filial Piety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최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8년 1월 9일 - 소세양신도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지정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1년 8월 17일 - 「효자 양곡 소세양과 곤암 소세량」 소병창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1년 - 「효자 양곡 소세양과 곤암 소세량」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편에 수록
관련 지명 소세양신도비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지도보기
채록지 동인당 한약방 -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대로22길 38[남중동 173-14]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소세양|소세량
모티프 유형 효자담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소세양소세량 형제의 효에 관한 이야기.

[개설]

「효자 양곡 소세양과 곤암 소세량」은 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86~1562]과 곤암(困菴) 소세량(蘇世良)[1476~1528] 형제의 지극한 효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효자 양곡 소세양과 곤암 소세량」은 2011년 8월 17일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에서 소병창에게서 채록하였다. 2011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양곡 소세양곤암 소세량은 여덟 남매 중 형제이다. 형 소세량이 대사간(大司諫) 벼슬에 있을 때였다. 당시 아버지가 구례현감(求禮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병이 나자 소세량이 상소를 올려 벼슬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왕이 효심에 감동하여 소세량을 전라감사(全羅監司) 에 임명하였다. 전라감사에 부임한 소세량이 밤낮으로 극진히 병간호를 하였으나 아버지는 결국 병이 깊어져 돌아가셨다. 소세량은 상을 치르기 위하여 전라감사를 그만두고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였다. 힘든 시묘살이에 병을 얻은 소세량은 삼년상을 치르고 다음 해에 죽었다.

양곡 소세양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혼자 남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상소를 올리고 내려왔다. 이때 왕이 소세양에게도 전라감사를 제수하였다. 나중에 소세양이 중앙관청으로 올라갈 때는 어머니를 모시고 한양으로 갔다. 이때 왕이 자신의 수라상을 소세양의 어머니에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진다. 왕과 소세양 사이의 의리가 두터워 소세양은 육조판서(六曹判書)를 다 거쳤다. 그러다 어머니가 너무 노쇠해지니 벼슬을 버리고 다시 익산으로 내려왔다. 이후 소세양은 왕이 영의정(領議政) 벼슬을 내려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효자 양곡 소세양과 곤암 소세량」은 ‘효자담’의 일종이다. 실존 인물인 소세양소세량 형제의 이야기와 관련 있으며, 지역성이 강하고 교훈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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