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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왕 아들의 태를 묻은 성태봉」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374
한자 箕準王-胎-城胎峯
영어공식명칭 Seongtaebong Buried the Placenta of King Kijun's S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현대/현대
집필자 신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1년 8월 13일 - 「기준왕 아들의 태를 묻은 성태봉」 정관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7년 - 「기준왕 아들의 태를 묻은 성태봉」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5-13 전라북도 익산시 편에 수록
관련 지명 천호산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
채록지 여산리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준왕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담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성태봉에 관한 이야기.

[개설]

「기준왕 아들의 태를 묻은 성태봉」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있는 성태봉(城胎峯)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기준왕 아들의 태를 묻은 성태봉」은 2011년 8월 13일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서 정관에게서 채록하였으며, 2017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익산시 여산면 옥금동[지금의 제남리] 천호산(天壺山)[500m]에 성태봉이 있다. 성태봉에는 천호산성(天壺山城)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산성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 봉화를 올리기 위한 봉화대였다는 말이 있다. 성태봉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는 기자조선(箕子朝鮮)준왕(準王)까지 올라간다. 기준왕이 성을 쌓았는데 후일 왕자가 태어나자 왕자의 태가 담긴 항아리를 성 한가운데에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태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주변에는 제사를 지내는 당제산(堂祭山)과 사직단(社稷壇)도 있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기준왕 아들의 태를 묻은 성태봉」은 ‘지명 유래담’이다. 성태봉의 이름이 기자조선 준왕의 아들의 태를 묻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내용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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