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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419
한자 益山東軒-
영어공식명칭 At Iksan Donghu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세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26년 - 구봉령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86년 - 구봉령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11년 - 「익산동헌에서」 『백담집』 속집 3권에 수록
배경 지역 익산시 - 전라북도 익산시
성격 한시
작가 구봉령(具鳳齡)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구봉령이 전라북도 익산의 동헌에서 유숙하며 느낀 소회를 읊은 한시.

[개설]

「익산동헌(益山東軒)에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 구봉령(具鳳齡)[1526~1586]이 전라북도 익산의 동헌에 하룻밤 머물면서 느낀 감상을 표현한 한시이다. 구봉령의 자는 경서(景瑞), 호는 백담(柏潭),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문집으로 『백담집(栢潭集)』이 전하고 있다. 『백담집』은 1670년에 원집 10권 4책의 초간이 이루어졌고, 1811년에 속집 4권 2책이 간행되었다. 『백담집』의 원집과 속집에 1,024제 1,135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익산동헌에서」는 속집의 3권에 수록되어 있다. 구봉령은 스무 살 때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이 된 이후, 성리학에 대한 깊은 조예와 빼어난 문학적 재질로 많은 명성을 얻었다. 조선 후기에 홍여하(洪汝河)[1621~1678]가 쓴 『백담집』의 서문에 따르면, 구봉령은 이황의 문도 중 문재(文才)를 논할 때마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과 자주 거론될 만큼 시문이 뛰어났다. 또한 관료로서도 엄정하고 공명정대하여, 동서 당쟁이 심화되던 시기에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중립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정치적 화합을 위하여 힘쓰기도 하였다.

[구성]

「익산동헌에서」는 장(場), 량(涼), 양(陽), 장(腸)을 운자로 쓰고 있는 칠언율시 형식이다. 시의 전반부[1~4구]에서는 익산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회상하고, 옛 영화가 사라진 익산의 적막하고 쓸쓸한 정취를 읊고 있다. 후반부[5구~8구]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더욱 고조되는 애상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내용]

구봉령은 마흔세 살 때인 1568년에 재상(災傷)을 자세히 조사하기 위하여 전라도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고, 이후 1583년 5월에 전라도관찰사를 제수받아 부임하였다. 『백담집』이 시체(詩體)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시의 제작 시기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1568년과 1583년에 익산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익산동헌에서」를 지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미망왕사이망양(微茫往事已亡羊)[아득한 지난 일 생각하니 이미 방향 잃었는데]

만촉당년기전장(蠻觸當年幾戰場)[당시에 몇몇의 싸움터에서 아웅다웅 다투었나]

제국산하운적막(濟國山河雲寂寞)[백제의 산과 강에는 구름이 적막하고]

기성초수우황량(箕城草樹雨荒涼)[기성의 풀과 나무는 비에 황량하여지네]

월함여원경잔야(月含餘怨傾殘夜)[달은 남은 원망 머금고 새벽으로 향하고]

안대유수규석양(雁帶遺愁叫夕陽)[기러기는 남은 수심 띠고 석양에 울어 댄다]

천고무성갱욕부(千古蕪城賡欲賦)[천고의 황폐한 성에서 화답시 지으려 하니]

한림낙목감인장(寒林落木撼人腸)[찬 숲속의 낙엽이 사람 애간장을 흔드네]

[특징]

「익산동헌에서」는 중국의 전고를 활용함으로써 시의 의미가 더욱 심화된 점이 특징이다. 1구의 ‘망양(亡羊)’은 『열자(莊子)』의 「설부(說符)」 편에 나오는 고사이다. 도망한 양(羊)을 쫓아가다가 갈림길이 많은 곳에 이르러 마침내 양을 잃어버리고 탄식하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흔히 학문의 방향을 잃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다. 2구의 ‘만촉(蠻觸)’은 『장자(莊子)』의 「칙양(則陽)」 편에 나오는 말이다. 만(蠻)과 촉(觸) 두 나라가 와우(蝸牛), 곧 달팽이의 뿔에 각기 자리 잡고서 하루가 멀다 하고 영토 쟁탈전을 벌인다는 우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세상의 명리를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데 쓰인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향토적 색채를 드러내는 시어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4구에 나오는 ‘기성(箕城)’은 ‘기준성(箕準城)’의 줄임말이다. 익산의 미륵산성(彌勒山城)을 말한다.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준왕(準王)미륵산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서 ‘기준성’이라는 이칭으로 불리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시어를 통하여 시의 향토적 정감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참고문헌]
  • 『백담집(栢潭集)』
  •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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