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072
영어공식명칭 Pass
이칭/별칭 영(嶺),재,현(峴),치(峙),티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현명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위치한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형성된 곳.

[개설]

고개란 산봉우리와 산봉우리를 연결하는 길을 지칭하거나, 산 능선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를 가진 지형을 뜻 한다. 현대처럼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낮고 다니기 쉬운 고갯길을 이용하여 사람과 물자를 빠른 속도로 이동 시킬 수 있었다. 또한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는 고개의 경우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국경지대의 경우 과거부터 국경 검문소나, 세관 등을 설치하여 운용하는 지형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터널이나 산을 일부를 깎아서 길을 만들기 때문에 고개의 이동성에 대한 이점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 대신 오늘날의 고개는 등산로, 산책길 혹은 산악자전거[익스트림 스포츠]와 같은 사람들의 건강과 취미생활을 위한 길로 활용되고 있다.

익산의 지형은 남북으로는 금강을 따라 함라산맥계가 형성되어 있고, 동북으로는 대둔산군을 따라 천호산에서 미륵산까지 산맥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동서부에는 산맥이 낮고 평평한 파랑상의 구릉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익산의 모든 산맥의 봉우리를 연결하는 길 또는 지형을 익산의 고개라고 할 수 있다. 호남지방의 중심에 속하는 익산 지역은 미륵산을 제외하고는 고도가 특별히 높은 곳이 없고, 상당수 면적이 평야이기 때문에 익산 내의 고개는 대부분 낮은 고도로 형성되어 있다.

익산의 유명한 고개로는 진포대첩 때 패한 왜군들의 퇴로로 이용된 한일고개, 팔봉동 석치마을에서 당산마을로 이어지는 팔봉동 지네산[당산]의 돌고개[현재 인근에 익산시 공설묘지와 군경묘지가 있음], 금마에서 여산으로 이어지는 숫고개[탄령, 탄현, 화곡(禾谷), 화곡(花谷)], 익산시 금마면왕궁면 사이에 위치한 매제미고개 등이 있다.

[한일고개]

고려 시대인 1380년(우왕 6) 8월에 나세, 심덕부, 최무선이 고려로 침입하려는 왜군 500여 척을 금강 하구[현재 전라북도 옥구군]에서 격파하는 진포대첩이 있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포대첩에서 패한 왜군들이 금강 하구에서 벗어나 도망가던 중 거쳐간 고개가 한일고개라고 한다.

[돌고개]

익산시 팔봉동의 석치마을에서 당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돌고개, 다른 말로 석치(石峙)라 부른다. 돌고개는 바닥이 돌로 되어 있어서 ‘돌고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돌이 거의 풍화되어 닳아 있다.

[숫고개]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산북리로 통하는 작은 길을 따라 2㎞ 정도 걷다 보면 미륵산용화산을 연결하는 숫고개 평지[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으로 갈 수 있다] 가 나온다. 미륵산용화산은 같은 산이지만, 동쪽 봉우리와 서쪽 봉우리를 구분하기 위하여 동봉을 용화산, 서봉을 미륵산이라고 부른다. 숫고개는 전반적으로 평탄한 지형과 낮고 완만한 구릉을 이루고 있다. 『고려사(高麗史)』 936년(태조 19)에서 “탄령을 넘어 마성에 주둔하였다.”라는 기록과 『고려사』의 ‘후백제군 정벌기’에서 “우리 군대는 황산군에 이르러 탄령(炭嶺)을 넘어 마성(馬城)에 주둔하였는데, 신검과 그 동생, 그리고 문무관료들이 모두 항복하였다.”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탄현이 바로 숫고개이다. 이러한 기록 때문에 숫고개는 ‘탄현’ 또는 ‘탄령’, ‘화곡(禾谷)’, ‘화곡(花谷)’으로 표기되어 왔다.

기록에 따르면, 935년(태조 18) 후백제의 왕 견훤은 넷째 아들인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다가, 첫째 아들인 신검과 충돌하게 된다. 아버지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신검은 반란을 일으켰고, 견훤은 신검의 위협을 피하여 고려 태조의 보호를 받게 된다. 936년(태조 19)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하여 황산[현재 남원의 황산, 연산]을 지나 숫고개를 넘어 마성[현재 익산의 금마]에 보병과 기병 10만 명을 주둔시킨다. 이를 알게 된 신검과 신검의 동생들, 신하들은 10만 대군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고려에 투항하게 된다.

고려 태조가 군대를 주둔 시킨 곳[마성]은 용화산의 석성으로 보인다. 현재 용화산의 석성 아래에는 ‘견훤의 진터’라고 불리는 ‘마산(馬山) 진터’가 있다고 한다. 또한 숫고개 인근에서 전라북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된 익산 백제토기 도요지가 발견되었다. 익산 백제토기 도요지에서 세발토기[三足土器]와 토기항아리[土器壺] 파편 등 백제의 토기편들이 많이 수습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익산의 숫고개는 후백제와 고려 초기의 역사와 함께 과거 금마 지역의 백제 문화를 고찰해 볼 수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

[매제미고개]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왕궁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구전 설화에 따르면, 매와 제비가 고개에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매 떼와 제비 떼가 서로를 싫어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매 떼와 제비 떼가 큰 싸움을 벌이게 되고, 매 떼의 강력한 무력에 제비 떼가 모두 죽고 만다. 그래서 고개가 제비 떼의 시체로 덮이게 되는데, 하늘이 이를 알고 매 떼의 악함을 벌하기 위하여 매 떼에게 천벌을 내려 매 떼가 모두 죽는다. 그래서 제비 떼의 시체 위에 매 떼의 시체가 덮이면서, 매와 제비가 한곳에서 죽어 묻혔다고 하여 ‘매제미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전 설화의 내용에 따르면 원래는 ‘매제비고개’라는 명칭이 더 정확한 명칭일 것으로 생각된다. ‘매제비’ 보다는 ‘매제미’가 더 발음하기 쉬운 편의성 때문에 오랫동안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매제비고개’에서 ‘매제미 고개’로 자연스럽게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쑥고개]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여산면으로 넘어가는 산길에 쑥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http://www.iso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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