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237
한자 古倉-
영어공식명칭 Gochangmaeul
이칭/별칭 고창마을,고창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고창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북도 익산군 웅포면 고창리 고창마을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전라북도 익산군 웅포면 고창리 고창마을에서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고창리 고창마을로 개편
성격 마을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고창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원래 ‘가죽 피(皮)’와 ‘개 포(浦)’를 써 ‘피포’ 마을이라 불렀다. 조선 초 있었던 덕성창(德成倉)이 성당포로 옮겨진 후 창고만 남았다는 뜻에서 옛날 창고라는 의미의 ‘고창(古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덕성창은 호남 북부 지역 20개 고을의 조세미를 저장하는 창고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마리, 대마리를 포함한 전 지역과 진소리 일부분으로 전라북도 익산군 웅포면 고창리가 개설되었다. 그중에서도 ‘고창’이라는 지명 이름은 고창마을에서 따왔다고 한다. 고창리에서 고창마을이 가장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고창마을이 속한 고창리는 1995년 5월 10일 익산군과 이리시의 통합으로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고창리가 되었다.

고창마을은 마을 주변에 금강이 흐르고 있어, 배가 드나들기 좋았고 조선 시대에는 5대 창고 중 하나로 이용되었다. 고창마을은 대략 3개의 동네로 구분되어 있으나 동편, 서편, 가서처, 새터, 동아시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예로 동네 가에 있다 하여 ‘가서처’, 서쪽에 있다 하여 ‘서편’, 동쪽에 있어 ‘동아시아’ 등이 있다. 그 외에 덕성창을 관리하고 지키던 사람들이 삶의 터를 만들어 살았던 곳은 ‘야막’이라 불렀다고 한다.

[자연환경]

고창마을 주변에 둥긋재산, 동편산, 창밧재산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산 모양이 둥글다 하여 ‘둥긋재산’, 동편 옆에 있다 하여 ‘동편산’이라 불렀다. 덕성창이 있었던 자리를 창밧재라 하였는데, 그 주변에 있는 산을 ‘창밧재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행가심고개가 산등 너머 있었다.

해발 132m의 일치봉[산]이 맹산리송천리, 멀리 성당면 갈산리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고창리 역시 포함되어 있다.

고창마을금강 변 주변에 있어 넓은 평야지대가 있고, 이는 고창리 전체도 마찬가지이다. 주로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쌀과 보리 외에도 웅포면은 생강이나 잎담배 등이 생산되고 있다.

[전설 및 민담]

행가심고개는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 옛날 어머니들이 일찍 죽은 아기를 묻는 애장을 행하였던던 곳이라 전해진다.

뒷산 중 하나를 순풍산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바람이 산을 타고 순풍 순풍 불어와 배를 잘 가게 한다 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현황]

고창마을고창리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있고, 고창리맹산리송천리 사이에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과 금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고창리는 대마제저수지, 웅포중학교가 있다. 조선 후기의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하사받은 두 명의 효자, 박상진(朴詳鎭)과 박재엽(朴載燁)의 여각(閭閣)이 고창리 대마[고창마을의 북쪽]에 있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두산백과(http://www.doopedia.co.kr)
  •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http://www.isoh.or.kr)
  • 익산시청(http://www.ik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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