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19
한자 益山崇林寺普光殿
영어공식명칭 Iksan Sungnimsa Temple Bogwangjeon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송천리 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선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345년연표보기 - 익산 숭림사 보광전 창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554년 - 익산 숭림사 보광전 화재
개축|증축 시기/일시 1555년 - 익산 숭림사 보광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13년 이전 - 익산 숭림사 보광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9년 - 익산 숭림사 보광전 중수[중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2년 - 익산 숭림사 보광전 수리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1월 8일연표보기 - 익산 숭림사 보광전 보물 제825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1년 - 익산 숭림사 보광전 해체 수리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익산 숭림사 보광전 보물 재지정
현 소재지 익산 숭림사 보광전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송천리 5]지도보기
성격 불전
양식 조선 후기 다포계 맞배집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관리자 숭림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숭림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개설]

숭림사(崇林寺)는 고려 충목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사찰의 이름은 달마대사가 수도하면서 도를 깨달았던 중국의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에서 ‘숭’ 자와 ‘림’ 자를 따온 것이라 한다. 숭림사 보광전(普光殿)숭림사의 중심 불전으로 건물 내부에 불단을 마련하여 불상을 모셨다. 중앙에는 숭림사 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을 모시고 좌우에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까지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본래 보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불전이므로 숭림사 보광전은 불상과 전각의 이름이 서로 맞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후대에 숭림사의 교리가 변화하면서 주불이 바뀌었지만 불전의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숭림사에는 조선 후기 이후에 건립된 여러 건물들이 있으며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익산 송림사 보광전은 익산 지역 내 현존하는 사찰 건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건축 기법이 우수하다. 익산 숭림사 보광전은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2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숭림사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함라산 자락에 있다. 함라면 금성교차로에서 웅포대교 방면으로 지방도723호선을 지나가다 보면 송천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500m 정도 들어가면 숭림사가 있다.

[변천]

숭림사 보광전『익산군지(益山郡誌)』에 1345년(충목왕 원년)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광전에서 발견된 암기와에도 1345년[지정(至正) 5] 행여선사(行如禪師)가 기와를 조성하였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신빙성이 높다. 2001년 해체 수리 도중 중도리 부재에서 먹으로 쓴 글씨가 발견되었는데, 1554년 화재가 나서 이듬해 법당을 다시 지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큰 피해를 입어 다시 지었는데, 보광전 불상 조성 관련 기록을 볼 때 1613년 이전으로 판단된다. 1628년과 1648년에는 기와를 교체하였으며, 「숭림사법당중수기」에는 1819년 보광전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875년 수리하고, 1882년 기둥과 대들보가 손상되어 다시 수리하였다. 1912년 수리와 함께 삼세불후불탱화를 제작하여 봉안하였다. 1991년과 1995~1996년 수리하고, 2001년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보수하였다.

[형태]

숭림사 보광전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높은 축대 위에 세워 다른 건물보다 위계가 높음을 강조하였다.

기단은 막돌을 사용하여 낮게 조성하였다. 주춧돌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원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의 형상이 일정하지 않다. 기둥 위에 조각한 여러 부재들로 짠 공포는 내외 3출목 형식으로 연꽃과 식물 문양[당초문] 등을 새겼으며, 건물 내부에는 용, 극락조 등을 화려하게 조각하여 부처가 계시는 극락세계를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공포의 조각 수법이 매우 독특한데 이러한 수법은 완주 화암사 극락전과 부안 개암사 대웅보전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당시 지역적인 특색으로 보인다. 또한 숭림사 보광전은 정면을 화려하게 꾸민 반면에 배면은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이것은 조선 시대 어려웠던 사찰의 경제 사정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가구 구조는 5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동자주(童子柱)[들보 위에 세워 도리나 마룻대를 받치는 짧은 기둥]를 세워 종보(宗樑)를 걸고, 종보 위에 파련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는 구조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며, 천장은 단차를 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상 위에는 용과 극락조, 구름 모양의 조각 등을 매달아 화려하게 꾸민 닫집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숭림사함라산 자락의 경사지에 단을 조성하여 여러 건물들을 세웠다. 보광전 아랫단에는 정혜원과 영원전이 안마당을 향해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하고, 보광전 맞은편에 우화루[1855년 중건]를 세워 4동의 건물이 중심 영역을 이루고 있다. 보광전 동쪽에는 1929년 지은 나한전이 있다. 이 밖에도 숭림사에는 최근에 새로 지은 종각과 요사, 산신각 등이 있다. 보광전 서쪽에는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돌로 만든 불상 대좌가 있다. 사찰의 진입로 부근 언덕에는 부도 4기가 있다. 모두 조선 후기 이후에 제작되었는데 가장 빠른 것은 1684년 조성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숭림사 보광전은 작은 규모의 불전이지만 우수한 건축 수법을 지니고 있다. 조선 후기 사찰 불전의 장식적인 경향과 장엄 수법을 보여 주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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