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30
한자 益山帝釋寺址
영어공식명칭 Iksan Jeseoksa Temple Site
이칭/별칭 제석정사,정역사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이다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3년 11월 5일~1993년 12월 9일 - 익산 제석사지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5월 12일연표보기 - 익산 제석사지 사적 제405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3월 17일~2003년 5월 12일 - 익산 제석사지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4월 6일~2004년 6월 30일 - 익산 제석사지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6월 22일~2008년 8월 14일 - 익산 제석사지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11월 26일~2009년 12월 29일 - 익산 제석사지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1년 9월 7일~2012년 10월 12일 - 익산 제석사지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익산 제석사지 사적 재지정
소재지 익산 제석사지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 지도보기
성격 사찰 터
지정 면적 25,432㎡
관리자 익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사찰 터.

[개설]

익산 제석사지(益山帝釋寺址)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백제 무왕 대의 왕실 사찰 터이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제석사는 백제 무왕 대[600~641]에 창건되었고, 칠층 탑이 있었으며, 639년 뇌우로 모두 소실된 후 다시 재건하였다. 익산 제석사지는 1998년 5월 12일 사적 제40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변천]

제석사는 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로 천도하여 창건한 사찰로 639년 소실 이후에 동일한 장소에 다시 재건되었으며,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시대까지 법등을 이어 갔다. 창건 당시의 사찰명은 ‘제석사’였지만 통일신라 시대에 ‘정역사’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시대에 다시 ‘제석사’가 되었다.

[위치]

익산 제석사지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번지에 있다.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동쪽으로 약 1.4㎞, 익산 미륵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5㎞ 떨어진 시대산(始大山) 남서쪽 구릉 말단부에 있다. 북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서 제석사 폐기장이 발견되었다. 왕궁면 행정구역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통합 이전에는 제석면(帝石面)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제석사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익산 제석사지는 1993년 11월 5일~1993년 12월 9일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처음으로 시굴 조사[조사 면적 1650㎡]하여 백제의 전형적인 1탑 1금당식 가람 배치를 확인하였으며, 수막새 등이 출토되었다. 2003년 3월 17일~2003년 5월 12일, 2004년 4월 6일~2004년 6월 30일 원광대학교 박물관이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가 전하는 639년 화재로 인한 건축물 폐기장을 시굴 조사하였다. 1차 시굴 조사[조사 면적 3,000㎡]에서 소조천왕상 등 64점이 출토되었으며, 2차 시굴 조사[조사 면적 3,000㎡]에서 벽체 편 등 43점이 출토되었다.

사역 중심부는 2007년 6월 22일~2008년 8월 14일, 2008년 11월 26일~2009년 12월 29일, 2011년 9월 7일~2012년 10월 12일 등 3차례에 걸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하였다. 1차 조사[조사 면적 9,100㎡]에서는 암막새 등 274점이 출토되었으며, 2차 조사[조사 면적 1만 5118㎡]에서는 명문와 등 32점이 출토되었고, 3차 조사[조사 면적 1만 6512㎡]에서는 수막새 등 318점이 출토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절터의 규모가 남북 168m, 동서 112m에 이르며, 1탑 1금당식 백제 사찰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확인되었다. 가람 배치는 중문, 목탑, 금당, 강당, 승방을 남북 일직선으로 배치하고 이를 회랑과 동·서 건물이 둘러싼 형태로 부여 정림사지(定林寺址)와 매우 유사하다. 제석사지와 제석사 폐기장 조사에서 연화문 수막새, 인동당초문 암막새, 불에 탄 소조상, 벽체 편, 인각와, ‘제석사(帝釋寺)’·‘정역(丁易)’·‘정역사(丁易寺)’명 명문와, 치미, 청동기물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익산 제석사지는 목탑지에 심초석(心礎石)[목조탑의 중심 기둥을 받치는 긴 주춧돌]이 노출되어 있고 나머지 주요 건물은 터만 정비하여 놓은 상태이다. 1998년 5월 12일 사적 제405호로 지정된 면적은 4만 7881㎡이다.

[의의와 평가]

익산 제석사지무왕의 익산 천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이자 근거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소조상은 부여 정림사지, 중국 영령사(永寧寺), 일본 가와하라데라[川原寺]의 출토품과 관련이 있어 동북아시아 교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