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65
한자 礪山-殉敎聖地
영어공식명칭 YeoSan Supjeongi Holyland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295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양은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68년 - 여산숲정이순교성지에서 김성첨[토마스] 등 천주교인 6명 순교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10월 19일연표보기 - 여산숲정이순교성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12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여산숲정이순교성지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소재지 여산숲정이순교성지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295 지도보기
성격 순교 성지
소유자 천주교 전주교구
관리자 여산성당[천주교 전주교구]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

[개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섭정(攝政)으로 조선을 통치하던 시기, 흥선대원군은 강력한 쇄국정책(鎖國政策)을 펼쳤다. 서양과 일본 등의 지속적인 교섭 요구가 궁극적으로는 왕조(王朝)를 뒤흔들고 국가의 자주권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더구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제2차 아편전쟁을 통해 북경을 함락하고, 이를 계기로 양인살육(洋人殺戮)이라는 천주교 탄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흥선대원군은 정치적 입지에 위기를 느꼈다. 결국 주교(主敎) 베르뇌(Berneux)[張敬一]와의 교섭을 통해 프랑스 세력으로 하여금 러시아를 견제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전환하여, 천주교 탄압을 결심하고 박해령을 선포하였다. 흥선대원군은 병인박해[1866~1871] 때인 1866년 봄과 여름, 1868년, 1871년 네 차례에 걸쳐 8,000여 명의 천주교도를 처형하였다. 1866년의 천주교 박해를 병인박해(丙寅迫害), 1868년의 박해를 무진박해, 1871년의 박해를 신미박해라고 부르며, 보통 ‘병인박해’로 합쳐 말한다.

전라북도 익산시의 경우,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여산백지사터성지가 병인박해 때 여산군의 속읍(屬邑)이었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장소이다. 특히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에서는 고산 대아리의 넓은 바위골에서 신앙촌을 이루고 살던 김성첨[토마스]를 비롯해 17명이 처형되었다. 이 중에는 김성첨의 일가 6명이 순교하였다. 투옥된 신자들은 순교 직전까지도 굶주림과 고문에 시달렸으며, 김성첨은 이들을 격려하며 “천당진복을 누리려는 사람이 이만한 고통을 참아받지 못하겠냐? 감심으로 참아받자.”라고 격려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유해는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천호성지에 안장되었다.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이다. 천주교 전주교구 제2 성지인 여산성지[숲정이, 백지사터, 옥터, 장터, 배다리 등] 가운데 한 곳이다.

[변천]

‘숲정이’는 순우리말로 “마을 근처에 있는 숲”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여산동헌 부근에 있던 숲으로,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을 처형했던 곳이다. 지금은 숲의 형태는 찾아보기 어렵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980년대 초 숲정이와 인근 1만 3223㎥[약 4,000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성지를 개발하였다. 여산성당을 건축하고, 예수 성심상의 조성과 당시 숲정이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조림 사업을 진행하였다. 3만 3057㎥[약 1만 평]의 탐방로와 주차장을 조성하고, 성지 체험과 피정의 집을 마련하는 작업을 하였다. 2009년에는 야외 광장을 단장하고, 2014년에는 주차장과 화장실과 십자가의 길 14개를 마련하였다.

[위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295 외 26필지에 해당된다. 여산성당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강경천이 흐르고 있다.

[현황]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입구에는 안내석과 피에타 상이 있으며, ‘너른 광장’이라 불리는 곳에 제대(祭臺)와 좌우측으로 십자가, 예수 성심상이 세워져 있다. 제대에는 14개의 십자가의 길이 걸려있다. 그 외에도 여산성지 전체를 포함하는 순례 코스로서 여산성당, 천주교인들의 교수형이 집행된 장터, 수장형이 집행된 배다리, 백지사가 집행된 백지사터 등을 돌아 볼 수 있다. 이곳은 천호성지와 나바위성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순례길의 코스이기도 하다.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는 2007년 10월 19일에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여산백지사터성지와 함께 병인박해 때 천주교 탄압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장소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 지역에 천주교 순교 관련 성지가 다수 존재하는 것은 여산 지역이 충청도와 전라도 경계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당시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천주교의 전파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앞섰기 때문이다. 특히 대둔산과 천호산 지역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조성하고자 하였던 교우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천주교 신자의 수가 많았던 탓에 박해에 의한 순교자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 익산시에 위치한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여산백지사터성지를 묶어 ‘여산성지’라고 부르며, 현재 천주교 전주교구의 제2 성지로 불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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