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13
한자 栢山院
영어공식명칭 Baeksanwon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2가 산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5년연표보기 - 백산원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1년 - 백산원 중수[1981]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9년 - 백산원 중수[1999]
현 소재지 백산원 -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2가 산9 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배산에 있는 일제 강점기 사당.

[개설]

백산원(栢山院)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배산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향의 맞배지붕 형식 사당이다. 1915년 만포(晩圃) 정제호(鄭濟鎬)모은(慕隱) 정동식(鄭東植)[1850~1910]의 후손들이 일제에 항거한 선조들의 충절을 사묘하기 위하여 세웠다. 익산의 연일정씨 가묘로 출발하였으나,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을 주벽으로 모시고 안양(安陽) 정흥식(鄭興植)을 추배하면서 익산의 대표적인 충절 사당이 되었다. 매년 음력 3월 10일 향사를 지낸다.

송병선은 송시열의 후손으로 한말의 존경받는 유학자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자결하였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정제호는 본관은 연일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벼슬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다가 차령에서 말에 떨어져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정흥식은 정제호의 조카이며, 면암 최익현의 문인이다. 정동식은 1876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첨정 벼슬을 지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로 병합되자 일본에 대한 포고문과 대한제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토적문을 남기고 전주 공북루(控北樓)에 올라가 목을 메어 자결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위치]

백산원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2가 산9에 있다.

[변천]

백산원은 1915년 건립되었으며, 1981년과 1999년 두 차례 중수되었다. 1999년 중수 때 ‘백산서원(栢山書院)’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형태]

백산원은 맞배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이다. 왼쪽에 정면 3칸의 강당인 세한당(歲寒堂)이 있다. 경내에는 백산서원 중건비(栢山書院重建碑) 2개와 전 이리시장 채의석 기적비[前市長蔡義錫紀績碑]가 세워져 있다.

[현황]

백산원은 1915년 연일정씨 문중과 익산 유림들의 협조로 건축되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과 담장이 허물어지자 1981년 이리시장 채의석의 후원으로 중수하였다. 다시 1999년 전라북도 지사 유종근과 익산시장 조한용의 도움으로 재정비되었다.

[의의와 평가]

백산원은 일제에 항거하여 충절을 지킨 인물을 배향한 사당으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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