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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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心樓 |
영어공식명칭 | Cheongsimru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정숙 |
건립 시기/일시 | 145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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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508년 - 청심루 중수 |
현 소재지 | 청심루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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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누정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있었던 조선 전기 누정 터.
청심루(淸心樓)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있던 누정이다. 1456년(세조 2) 군수 노상군(盧相君)이 객관의 동쪽에 건립하였고, 1508년(중종3) 군수로 부임하게 된 밀양의 손후(孫侯)가 중수하였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익산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청심루는 송을개(宋乙開), 구봉령(具鳳齡)[1526~1586], 송강(松江) 정철(鄭澈),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사담(沙潭) 나덕원(羅德元), 그리고 명군(明軍) 제숙(提叔) 이여송(李如松), 참군(參軍) 여응종(呂應鍾) 등과 교유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던 고성후(高成厚)[1549~1602]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유람을 하며 글을 남긴 곳이다.
조선 전기의 문인인 송을개가 쓴 기문(記文)을 보면 “금마군은 옛날 무강왕(武康王)이 왕을 칭한 땅이다. 산천은 그 옛날과 같고 탑·묘가 완연하니 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가히 웅장한 풍토가 장렬하였음을 알 수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청심정 기문에 “금마군(金馬郡)은 옛날 무강왕이 칭왕(稱王)한 땅이다. 산천은 그 옛날과 같고 탑과 묘(廟)가 완연하니, 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웅장한 풍도가 장열하였음을 짐작할 만하도다. 국조(國朝)에 와서 병자년에 무진(茂珍) 노상군(盧相君)이 이 고을을 지켰는데, 처음으로 누각을 객관 동쪽에 세웠다.”라고 적고 있다. 이 외에도 조선 팔도의 노래에서 익산(益山)을 두고 노래한 시에서 유일하게 청심루를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청심루는 기록에 따르면 “객관의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를 가리킨다.
청심루는 기록에 의하면 기존에는 웅장한 누각이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청심루는 익산 지역에 가장 먼저 세워진 누정이며, 여러 문인들이 청심루를 노래하는 글을 남긴 곳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