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헌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74
한자 菊軒集
영어공식명칭 Gukheonjip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08년연표보기 - 『국헌집』 편찬
간행 시기/일시 1866년연표보기 - 『국헌집』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문집
저자 소시만
편자 소환술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30.8×19.8㎝
어미 상일엽 화문어미(上一葉花紋魚尾)
권수제 국헌집
판심제 국헌집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인 조선 후기 학자 소시만의 문집.

[개설]

『국헌집(菊軒集)』은 조선 후기 영조(英祖)[1694~1776]가 재위하던 시기에 짧게 살다 간 소시만(蘇時萬)[1734~1765]의 문집이다. 소시만은 1734년(영조 13)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지역에 있는 쌍봉(雙峯)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유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의학, 점복, 병법, 음율 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세 살 때부터 글자를 알 정도로 뛰어난 기재였다. 열 살이 못 되어 사서삼경과 『자치통감(資治通鑑)』, 당시(唐詩)를 공부하였고, 열네 살에 향시에 합격한 이후로는 더는 과거 공부에 몰두하지 않았다. 이후로는 수리학(數理說)과 성리학을 파고들어 「황극경세검(皇極經世鈐)」, 「수리설」을 지었고, 서른 살에 「사서차의(四書箚疑)」를 지었는데, 현재는 「수리설」 한 편만이 1866년에 간행된 『국헌집』에 전하고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소시만의 자는 원보(元甫), 호는 국헌(菊軒),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4대조 소두산(蘇斗山)은 송시열과 송준길의 문하에서 활약하였으며, 1660년(현종 1)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소시만은 1734년 아버지 소성집(蘇成集)과 어머니 연안이씨(延安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하였다. 3살 때 부친이 글자를 가르쳐 주니, 첫날 41자를 알고 둘째 날은 수백 자를 알고 잊지 않으므로, 부친이 어린 나이에 무리할 것을 걱정하여 더는 가르치지 않을 정도였다. 네 살 때에 오언 당시(五言唐詩)를 배우고, 할머니에게서 훈민정음을 배웠다. 6살 때 『자치통감』을 읽었으며, 8살에는 『소학(小學)』, 『대학(大學)』, 9살에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읽었다. 10살 때 자신을 아껴 주던 할머니가 세상을 뜨자 극진한 슬픔 속에 상례를 다하였다. 이후 이재화(李載華)에게 학문을 배웠고 열두 살에는 「우마우열론(牛馬優劣論)」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14살 때 향시에도 합격하였다. 15살에 할머니의 오빠 이숙(李熽)에게서 수학하였고, 열여섯 살에는 『주역(周易)』을 읽었다.

18살이 되던 해에 아내 도강김씨(道康金氏)가 죽자 슬픔 속에 상기를 마쳤다. 20살에는 은진송씨(恩津宋氏)와 혼인한 후로 다소 안정을 찾아 「삼식서(三式書)」, 「천문전도(天文全圖)」, 「소지(小誌)」 등을 저술하였으며, 21살에는 「황극경세검」을 저술하였다. 29살에는 「수리설」을 구술하였으며, 31살에는 「사서차의」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아버지 소성집이 설익은 재주를 펼치지 말고 나이를 더 먹고 경험을 쌓아 세상일에 통하고 나서 글을 지으라고 충고함에 따라 그동안 지은 많은 저술들을 불태웠다. 그러고 나서 불과 2년 후인 1765년(영조 41) 소시만은 병에 걸려 3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시만의 행적은 어머니 연안이씨가 한글로 기록한 것을 이씨의 사촌 동생 이조악(李朝岳)에게 넘겨 한문으로 옮기게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소시만의 막내동생 소시운(蘇始運)이 가장(家狀)을 지어서 정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808년(순조 8) 소시만의 손자 소환술(蘇煥述)이 저자의 남은 유고를 수집하여 편집하고 1835년에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책의 사주(四周)에 한 개의 검은 선이 돌려진 사주 단변(四周單邊)이며 본문의 각 줄 사이를 계선(界線)으로 구분하고 있다. 반곽(半郭)은 22.3×15.5㎝, 계선이 있고, 10행 20자이다. 주는 쌍행이고 어미는 상일엽 화문어미(上一葉花紋魚尾)이며 책의 크기는 30.8×19.8㎝이다.

[구성/내용]

『국헌집』은 2권 1책으로, 책머리에 좌의정 홍석주(洪奭周)가 1835년(헌종 1) 10월에 쓴 서문과 첨지중추부사 이득일(李得一)이 1808년(순조 8)에 쓴 서문이 있다. 이를 통해 소시만의 학행과 문집 편찬 경위를 알 수 있다.

권 상(上)은 「수리저설(數理著說)」 한 편인데, 총 119면에 2만 4000여 자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이다. 1762년 소시만의 나이 스물아홉 때에, 문인이자 먼 친척인 소수몽(蘇洙蒙)의 부탁으로 구술한 것을 소수몽이 기록한 것이다. 천지와 만물의 이치를 수리(數理)로 풀이한 것으로, 소시만이 도달한 학문적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소수몽은 여기에다가 병가(兵家)에 관한 서술도 덧붙이려고 하였으나 소시만이 허락하지 않았다.

권 하(下)는 서(書)와 책(策), 시, 부록으로 되어 있다. 서간은 송덕수(宋德秀)에게 『주역』과 상수(象數)[『주역』의 괘(卦)에 나타난 형상과 변화를 말함], 천지인(天地人)의 관계에 대하여 답한 글, 화산서원(華山書院)을 옮겨 짓는 것에 대하여 유생들을 대신하여 원장에게 올린 글, 외사촌 형 이현룡(李顯龍)에게 부모를 잘 모시고 형제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답장한 편지 등이다. 책문은 정치의 요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올린 글인데,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에서 결정되니 임금이 마음 하나만 바르게 가진다면 모든 정치가 스스로 바르게 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시는 가을밤 안심사(安心寺) 적설루(積雪樓)에서 읊조린 것과 송나라 장식(張栻)과 꿈속에서 시를 주고받았다는 오언절구 등 두 수에 불과한데, 그나마 두 번째 시에는 셋째 구절이 빠져 있다.

부록은 스승이자 할머니의 오빠인 이숙이 소시만에게 지어 준 「증소손(贈蘇孫)」 다섯 수, 소시만이 죽자 당숙 소명집(蘇明集)과 재종숙 소홍집(蘇弘集) 등이 지은 제문 다섯 편, 막내동생 소시운이 소시만의 생애와 학문, 문집 편찬 과정에 대해 서술한 가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국헌집』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서른둘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학자의 삶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