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산송 관련 문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98
한자 金濠山訟關聯文書
영어공식명칭 Documents Related to the Sansong of Kim Ho's Famil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21년 - 강필서 수표 작성
작성 시기/일시 1854년 - 김호 소지문서 5점 및 소장 1점 작성
작성 시기/일시 1855년 - 김호 의송 2점, 첩정 2점, 첩정 2점, 서목 3점 작성, 김연 원정 1점 작성
작성 시기/일시 1856년 - 전주부윤 전령 1점, 김연 소지 1점, 김호 단자 1점 작성
작성 시기/일시 1857년 - 김호 소지 20점, 익산군수 첩정 2점 및 서목 2점, 김호 의송 3점, 의송 2점, 탁연급 및 송욘환의 다짐 2점, 강진기와 탁연급의 수표 2점, 탁연급과 강진기의 수기 1점, 김호 산도 2점 작성
작성 시기/일시 1859년 - 김호 소지 8점, 탁연급 수기 1점, 김호 의송 5점, 산도 1점 작성
작성 시기/일시 1860년 - 김호 소지 3점, 의송 2점, 김형선 소지 1점 작성
완료 시기/일시 1862년 - 김호 산송 관련 문서 작성 완료
소장처 경주김씨가 - 전라북도 익산시 용제동 지도보기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김호
용도 산송 문서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용제동의 경주김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산송 관련 문서.

[개설]

김호 산송 관련 문서(金濠山訟關聯文書)전라북도 익산시 용제동의 경주김씨(慶州金氏)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산송[묘지를 쓴 일로 생기는 송사(訟事)] 관련 문서이다. 1821년부터 1862년까지의 문서로, 주로 소지와 의송, 첩정, 서목, 다짐, 수표 등이 남아 있다.

전라도 전주부 북일면 내곶 영등[지금의 익산시 북일면에 속함] 및 남일면 신혜동, 갈마동[지금의 익산시 남일면에 속함]에 있던 김호 가문의 선산에 송용환(宋龍煥), 강진기(姜鎭綺), 탁연급(卓然岌) 등의 가문에서 몰래 묏자리로 쓰거나 벌목해 가는 것을 금지시켜 달라고 전주부윤과 전라도관찰사, 암행어사 등에게 청원한 문서이다.

김호 가문에서는 소송 과정 중에 김연(金淵) 등이 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나, 여러 차례의 소지와 의송, 산도 등을 통하여 용제동의 경주김씨 집안의 문서로 확정되어 갔다. 또한 경주김씨 가문의 청원에 대해 사태 처리를 위하여 익산군과 전주부, 전라감영 사이에 오고 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수령이나 관찰사, 암행어사에게 올린 산송 관련 문서는 그 내용을 검토하고 나면 관련 문서 좌측 하단에 제사(題辭)를 써서 문서를 다시 돌려주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경주김씨 가문에서 고문서를 보관할 수 있었다.

[형태]

총 84점의 문서로서, 소지(所志) 41점, 의송(議送) 15점, 산도(山圖) 2점, 첩정(牒呈) 7점, 서목(書目) 5점, 전령(傳令) 1점, 단자(單子) 1점, 수표(手標) 3점, 수기(手記) 2점, 다짐(侤音) 3점, 원정(原情) 1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내용]

1821년부터 1862년까지 작성된 산송 관련 문서로, 소지와 의송, 첩정, 서목, 다짐, 수표 등이 남아 있다. 먼저 1821년에 남긴 문서는 강필서(姜畢瑞)의 수표(手標)이다. 강필서가 산지에 몰래 묘소를 쓰지 않겠다고 경주김씨 가문에 다짐하는 뜻으로 작성하였다.

둘째는 1854년 문서이다. 김호가 전주부에 올린 5점의 소지 문서와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1점의 소장이다. 당시 전주부에 속하였던 북일면 내곶 등에 있는 김호의 선산에 탁숙첨(卓淑瞻), 탁관중(卓寬中), 강희일(姜希一)이 몰래 묏자리를 썼으니, 조사하여 엄히 다스리고 파 가게 하여 달라고 청원한 문서이다.

셋째는 1855년 문서이다. 김호가 투장한 탁숙첨, 강세갑의 죄를 다스려 주고 무덤을 파 가게 하여 달라고 관찰사에게 올린 의송 2점, 익산군수가 죄인 김연을 압송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주부윤에게 보고한 2점의 첩정, 전주부에서 다시 김연의 조치에 대하여 전라도관찰사에 올린 첩정 두점과 서목 3점, 김연이 익산군수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풀어 줄 것을 요청한 원정 1점이 있다.

넷째는 1856년 문서이다. 전주부윤이 북일면의 도윤에게 내린 전령 1점, 김연과 김호가 각각 송용환이 무덤을 만든 사실을 전라도관찰사에게 보고하여 파 가게 하여 달라고 익산군에 올린 소지 1점과 관찰사에게 직접 올린 단자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섯째는 1857년 문서이다. 김호가 선산에 무덤을 올린 송용환, 강진기, 탁연급을 엄히 다스려서 무덤을 파 가게 하여 달라는 소지 20점, 익산군수가 감영에 김호의 선산과 관련하여 올린 첩정 2점과 서목 2점, 김호가 관찰사에게 올린 의송 3점과 암행어사에게 올린 의송 3점, 투총한 무덤을 파 가겠다고 한 탁연급과 송용환의 다짐 2점, 강진기와 탁연급의 수표 2점, 탁연급과 강진기의 수기 1점, 김호의 선산을 그린 산도 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째는 1859년 문서이다. 김호가 선산에 있는 나무를 베서 팔아 버린 강필서, 정익삼(鄭益三)을 잡아들여 소나무값을 추급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과 무덤을 만든 송용환에게 무덤을 파 가게 하여 달라는 등의 소지 8점, 탁연급이 무덤을 파 갔다는 것을 증명한 수기, 순찰사에게 소나무를 베어다 판 강의일 등의 죄와 송용환이 무덤을 만든 죄를 엄히 다스려 달라고 요청한 의송 5점, 김호의 산소를 그린 산도 1점이다.

일곱째는, 1860년 김호가 전주부의 선산에 무덤을 만든 자를 잡아서 파 가게 하여 달라고 요청한 소지 1점, 1862년 선산에 무덤을 만든 송용환의 죄를 요청하는 김호의 의송 2점과 소지 1점, 1863년 선산의 무덤에 가시를 두를 것을 청하는 김호의 소지 1점, 1882년 선산에 무덤을 만든 이제진(李濟振)에게 즉시 무덤을 파각하여 달라고 요청한 김형선(金瀅鮮)의 소지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밖에, 연대를 알 수 없는 김호의 소지와 김학순(金學純) 소지가 있다. 모두 선산에 무덤을 함부로 만든 것과 관련된 문서이다.

[의의와 평가]

김호 산송 관련 문서는 산송과 관련하여 조선 시대 행정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으며, 행정이 지방민의 갈등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한국학자료센터(http://kostm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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