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열남궁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623
한자 咸悅南宮氏
영어공식명칭 Hamyeol Namgu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961년 3월 14일 - 낭궁원청 출생
관련 사항 시기/일시 994년 - 함열낭궁씨 시조 낭궁원청 감물아현[현 익산시 함라읍] 백으로 책봉
본관 함열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함열남궁씨 세거지 -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갈산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남궁수(南宮修)
입향 시조 남궁원청(南宮元淸)

[정의]

남궁원청을 시조로 하고, 남궁득희를 1세조로 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세거성씨.

[개설]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는 남궁원청(南宮元淸)[961~?]이 시조이다. 이후 세보(世譜)가 실전되어 후손인 남궁득희(南宮得禧)를 1세조로 하여 익산 지역에서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조선 시대 함열현은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 지역이다.

[연원]

남궁씨(南宮氏)의 유래는 중국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족이었던 남궁자(南宮子)가 은나라 건국에 공을 세우고 남쪽 궁인 남궁(南宮)에 살았다고 하여 ‘남궁’으로 성씨를 정하였다고 한다. 함열남궁씨의 시조 묘정비에 보면,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게 왕위를 뺏기고 남쪽으로 피신할 때 남궁수(南宮修)가 같이 와서 사도(司徒)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함열남궁씨의 시조인 남궁원청은 고려 성종 대에 문하대중 평장사를 지냈고, 여진족이 침입하자 대장군이 되어 여진족을 압록강 밖으로 몰아내는 공을 세워서 함열의 옛 이름인 감물아(甘勿阿)의 백(伯)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함열이 남궁씨의 관향이 되었다. 이후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세계를 확인할 수 없어서 후손인 남궁득의를 1세조로 하고 있다. 함열남궁씨는 크게 참봉공파(參奉公派)·교리공파(郊理公派)·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지평공파(持平公派)·연안공파(延安公派)·승지공파(承旨公派)·모현공파(慕賢公派)로 나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열현」 성씨 조에 따르면, 남궁·조(趙)·장(張)·염(廉)·박(朴)·김(金)·임(林) 등이 토착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함열남궁씨는 남궁원청이 감물아백에 책봉된 이후 주로 익산 지역 일대에서 세거하여 왔다. 함열남궁씨는 문과 급제자 15명, 무과 급제자 5명, 생원·진사시 합격자 50명을 배출하였다. 이들 중 문과 급제자는 남궁희(南宮憘), 남궁지(南宮芷), 남궁활(南宮活), 남궁해(南宮楷), 남궁집(南宮鏶), 남궁찬(南宮璨), 남궁옥(南宮鈺), 남궁배(南宮培), 남궁성(南宮惺), 남궁후(南宮垕)이다.

[현황]

익산의 함열남궁씨익산시 함열읍 주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1997년 화암장학회를 설립하고, 매년 10여명의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함열남궁씨가 전국에 20,715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중 서울 4,873명, 부산 234명, 대구 152명, 인천 1,985명, 광주광역시 208명, 대전 804명, 울산 154명, 세종 141명, 경기도 6,858명, 강원도 1,526명, 충북 558명, 충남 1,193명, 전북 1,437명, 전남 201명, 경북 156명, 경남 201명, 제주 34명이 거주하며, 익산에는 534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관련 유적]

함열남궁씨 관련 유적으로는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도천마을에 효열각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3(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국가통계포털(http://kosi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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