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정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631
한자 延日鄭氏世居地
영어공식명칭 Residential Place of Yeonil Je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57년연표보기 - 전라북도 이리시 모현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전라북도 이리시 모현동에서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으로 개편
성격 세거지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는 연일정씨의 주요 세거지.

[개설]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연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익산에 들어와 정착한 연일정씨 입향조는 정덕성(鄭德成)[?~?]이며, 후손들이 익산시 모현동2가 원모인마을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명칭 유래]

익산시 모현동은 고려 시대에 옥야현이 있던 곳이었으나, 조선 시대 전주부에 편입되어 북일면(北一面)으로 편제되었다가 1899년에 익산군 북일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이 일본이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북일면의 도교리(島橋里)·외장리(外長里) 전체와 내장리(內長里)·영곡리(永谷里)·모인리(慕仁里)·신리(新里)의 일부를 합하여 모인리(慕仁里)라 하였다. 또한 북일면의 항가리(杭佳里)·묵동(墨洞)·요동(堯洞)·고현리(古縣里)·동문리(東門里)·옥호리(玉壺里) 전체와 매교리(梅橋里)·영곡리(永谷里)·남중리(南中里)·남당리(南堂里), 서일면(西一面)의 학곤리(鶴崐里) 일부를 합하여 고현리(古縣里)라 하였다.

모인리와 고현리는 1917년 익산면에 편입되었고, 1947년에 이리시에 편입되었다. 1957년 동명 개정에 따라 모인과 고현의 이름을 따서 모현동이라 하였다. 고현리는 이 지역이 과거 옥야현 지역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원모인마을의 ‘원모인’은 원래는 모인리였다는 의미이다.

[형성 및 변천]

익산시 모현동2가 원모인마을연일정씨 지주사공파의 세거지이다. 정덕성이 조선 초에 들어온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2001년 간행된 『익산시사』에는 원모인마을에 연일정씨 13호가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현동배산(盃山)[해발 97m] 주변은 익산 연일정씨의 중심 세거지였으나 이후 도시 지역으로 많이 이주하여 거주자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자연환경]

천호산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금마면용화산을 형성하고, 용화산 남쪽 줄기가 팔봉동을 거쳐 모현동에서 배산을 이루었다. 배산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은 도시화가 진행되어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모현동 중앙으로 철도가 통과하여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북동쪽에 약간의 경작지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현영동신용동 지역으로 경작지가 있다. 배산연일정씨 오천공파 배산문중과 서씨 문중의 종산이며, 특히 연일정씨의 집성촌으로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현황]

익산시 모현동2가 원모인마을은 동서로에서 갈라진 동서로1길이 마을 안길을 형성하고 있으며, 마을 앞쪽으로 철도가 통과한다. 이곳에는 연일정씨의 제각과 효열각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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