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견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635
한자 林堅味
영어공식명칭 Im Gyeonm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61년 - 임견미 나주도병사 재임 중 홍건적이 침입하자 공민왕 호종
활동 시기/일시 1362년 - 임견미 대호군으로 승진하고 1등공신 책봉
활동 시기/일시 1370년 - 임견미 동녕부 토벌
몰년 시기/일시 1388년연표보기 - 임견미 사망
성격 무신
성별
본관 평택(平澤)
대표 관직 문하시중

[정의]

익산 지역 토착 성씨인 익산임씨와 관련이 있는 고려 후기의 무신.

[가계]

임견미(林堅味)[?~1388]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현재 평택임씨의 가계는 나주임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당나라 문종[826~840] 때에 신라로 왔다는 임팔급(林八伋)을 도시조(都始祖)로 하는 동계 혈족으로 본다. 그러나 임팔급의 시조설은 기존 신라의 임씨가 중국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 평택임씨의 시조를 임세춘(林世春)을 1세조로 하는 전객령계와 임언수(林彦修)를 1세조로 하는 충정공계로 나뉘는 때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그중 임견미와 관련이 있는 충정공계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 기반을 갖추는데, 임언수는 아들인 임견미 덕분에 신분이 상승하여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에 책봉되었고 임견미의 형제들인 임성미(林成味), 임제미(林齊味), 임세미(林世味) 또한 모두 출세하였다.

평택임씨에서 분적한 조양임씨의 경우 임언수의 넷째 아들인 임세미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다시 전주임씨와 옥야임씨 등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전주임씨는 임세미의 손자인 임실을 파조로 하며, 익산과 관련이 있는 옥야임씨도 시조인 임돈이 임세미의 후손이라고 한다. 익산 지역의 토착 성씨인 익산임씨 또한 시조를 평택임씨 충정공계 1세조 임언수의 후손인 임완(林完)이나 임성비(林成庇)로 보기도 한다.

[활동 사항]

임견미는 고려 공민왕 집권 초 다루가치[중국 원나라 때 고려의 점령 지역에 두었던 벼슬]로 있으면서 공을 세워 중랑장에 임명되었다. 나주도병마사로 재임 중이던 1361년(공민왕 10)에는 홍건적이 침입하자 공민왕을 호종하였고, 1362년 대호군으로 승진하고 1등공신이 되었다. 이후 밀직부사, 진주도병마사, 전리판서, 북계순무사 등을 역임하였다. 1370년에는 동녕부 토벌에 참전하였고, 제주의 ‘목호의 난’ 토벌에도 참여하였다.

1375년(우왕 1) 토크토아부카[脫脫不花]가 고려의 왕위를 차지하고자 쳐들어왔을 때 이를 대비하였고, 1377년(우왕 3)에는 왜구를 격퇴하였다. 1380년(우왕 6) 이인임 등과 함께 경복흥(慶復興) 세력을 제거한 후에는 문하시중과 평원부원군에 올라 권력을 장악하였지만 1388년 최영·이성계 등에게 제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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