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29
한자 嚴昌燮
영어공식명칭 Eom Changseop
이칭/별칭 엄병옥(嚴秉玉)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상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12월 12일연표보기 - 엄창섭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강경읍 만세운동 시작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엄창섭 강경읍 만세 시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검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7일 - 엄창섭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 확정
몰년 시기/일시 1973년 12월 5일연표보기 - 엄창섭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엄창섭 대통령표창 수훈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엄창섭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출생지 대붕암리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활동지 강경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창영학교 교사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엄창섭(嚴昌燮)[1892~1973]은 1892년 12월 12일 태어났다. 익산 제석교회 출신의 기독교인이며, 엄병옥(嚴秉玉)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엄창섭은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강경의 창영학교(昌永學校)에서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과 함께 3월 10일 강경읍 장날을 이용한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이튿날 엄창섭은 태극기 제작을 위한 종이와 물감 등을 구입한 뒤 김종갑(金鍾甲)과 추성배(秋聖培)를 불러 태극기 200여 매를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아침 엄창섭은 서삼종(徐三鍾)에게 태극기를 가마니에 넣어 옥녀봉(玉女峰)으로 운반하도록 하였고, 오후 3시경에는 옥녀봉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다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시위대는 강경읍 장터로 내려와 5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다. 엄창섭은 시위 도중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고, 그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73년 12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엄창섭의 공적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3(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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