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43
한자 姜仁聲
영어공식명칭 Kang Insu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정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1월 13일연표보기 - 강인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6일 - 강인성 군산 서래장터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검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강인성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6월형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30년 8월 1일연표보기 - 강인성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강인성 대통령표창 수훈
출생지 익산 웅포 상제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제성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영명학교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군산 - 전라북도 군산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강인성(姜仁聲)[1897~1930]은 1897년 1월 13일 익산군 웅포면 상제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제성리]에서 태어났다.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 등과 함께 이튿날인 3월 6일에 군산 서래장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등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거사 계획을 눈치 챈 일본 경찰에게 이두열·김수영·박연세 등이 연행되자 연행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고 주민들도 합세하여 순식간에 대열은 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강인성 등은 준비해 두었던 태극기를 흔들며 앞장섰고, 연행자 석방을 외치며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검거되었다. 강인성은 1919년 3월 31일에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 8월 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한민국 정부는 강인성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19. 4. 30.)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3(고려서림,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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