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내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87
한자 蘇來元
영어공식명칭 So Naewon
이칭/별칭 소병원(蘇秉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 7월 15일연표보기 - 소내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9월 - 소내원 중국 상해로 망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소내원 상해임시정부 특파원으로 귀국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소내원 중국으로 망명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소내원 귀국
몰년 시기/일시 1967년 3월 12일연표보기 - 소내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소내원 건국포장 수훈
출생지 금마면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거주|이주지 상해 - 중국 상하이직할시
활동지 상해 - 중국 상하이직할시
묘소 대전국립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소내원(蘇來元)[1890~1967]은 1890년 7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1919년 9월에 가산을 정리하여 자금을 마련한 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로 망명한 소내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리한 가산을 모두 군자금으로 내놓았고 정부 요인으로 채용되어 활동하였다.

소내원은 1919년 7월 10일 설치 공포된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지방행정제도인 연통제(聯通制) 설치를 목적으로 국내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귀국하였다. 귀국한 소내원은 전라남북도 내에 비밀 연락망을 두고 국내 정보를 통신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의 활동을 1921년까지 전개하였다.

1921년 연통제가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자 소내원은 활동을 멈추고 서울의 계림학원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국내외 세력과 연계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중국으로 피신하였다. 1931년 병이 들어 익산으로 돌아온 뒤에는 일제의 감시하에 지냈다. 1967년 3월 12일 사망하였다. 소병원(蘇秉元)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묘소]

소내원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646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한민국 정부는 소내원의 공적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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