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교 고사모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018
한자 甑山敎高師母派
영어공식명칭 Jeungsangyo Gosamopa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남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신종교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었던 태을교 소속 단체.

[개설]

증산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이른바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종교적 행위를 통해 후천개벽의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예견했고, 그의 사상은 해원상생(解冤相生)으로 압축된다. 1909년 강증산이 세상을 떠난 뒤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강증산이 수부(首婦)로 지정한 고판례는 흩어진 신도들을 모아 ‘선도교’라는 교단을 조직하였다. 이후 고판례는 차경석의 교권장악에 반발하여 차경석과 결별하고 1918년 독자적으로 김제에서 태을교를 창립했다. 이후 1933년 전라북도 옥구군 성산면 오성산에 교당을 짓고 동화교회수양소라는 간판을 걸고 은둔생활을 했다. 1935년 고판례가 사망하자 교단은 이용기파, 고민환파, 백윤화파 등으로 분파되었는데 이들 분파를 증산교 고사모파(甑山敎高師母派)라고 한다.

[변천]

익산 지역에서 활동했던 증산교 고사모파(甑山敎高師母派)는 이용기를 중심으로 한 분파이다. 증산교 고사모파(甑山敎高師母派)의 교당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세워졌으나 지도자는 익산군[현 익산시] 춘포면에 거주하는 이용기였다. 이용기가 1980년에 사망한 뒤 익산시 왕궁면 오룡동[현 쌍제리]에 사는 이교성이 지도자가 되어 포교하였는데, 당시 신도 70여 명 가운데 익산 지역 교인이 50여 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교세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백윤화의 출생지 역시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인 것으로 보았을 때 증산교 고사모파(甑山敎高師母派)는 익산 지역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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