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함라에 살게 된 연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350
한자 林川趙氏知足堂公派-咸羅-緣由
영어공식명칭 Why Lim Chun-jo's Jijokdanggongpa Lived in Hamr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0년 12월 29일 - 「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함라에 살게 된 연유」 조형일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1년 - 「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함라에 살게 된 연유」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
관련 지명 함라면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지도보기
채록지 교동마을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조지서|연산군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전하여지는 임천조씨 지족당공파에 관한 이야기.

[개설]

「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함라에 살게 된 연유」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지역에 임천조씨(林川趙氏) 지족당공파(知足堂公派)가 살게 된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임천조씨 지족당공파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지서(趙之瑞)[1454~1504]의 후손들이다. 조지서가 연산군(燕山君)[1476~1506] 때 삭탈관직(削奪官職)된 후 후손들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이때 조씨의 가솔들이 익산의 함라로 와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함라에 살게 된 연유」는 2010년 12월 29일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교동마을에서 조형일[1932년생]로부터 채록하였으며, 2011년에 펴낸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실려 있다.

[내용]

함라면에는 김씨와 이씨, 조씨 세 부잣집이 있었다. 연산군이 태자로 있을 때 스승 두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조지서는 품성이 대단히 강직하였다. 조지서는 왕의 명을 받들어 태자를 교육할 때 엄하게 다스렸지만, 다른 스승은 우유부단한 교육을 하였다. 평소 조지서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태자는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스승이었던 조지서를 진주로 귀향 보냈다. 이후 조지서의 삼족(三族)을 멸하였고, 조지서의 직계가족과 방계가족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조지서의 일가는 처음에 전라도 여산(礪山)에 와서 터를 잡고 살다가, 이후 함라(咸羅)에 들어와 살았다. 연산군이 폐위된 이후 중종(中宗)[1488~1544]은 조지서를 복권시키고 ‘지족당(知足堂)’이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이후 함라의 임천조씨는 ‘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되었다.

[모티프 분석]

「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함라에 살게 된 연유」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익산의 함라 지역에 터를 잡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임천조씨가 연산군의 폭정과 폐비 윤씨(廢妃尹氏)[1455~1482] 사건에 휘말렸음을 시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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