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림사를 중창한 행여 선사와 삼 부잣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368
한자 崇林寺-重創-行如禪師-三富者
영어공식명칭 Haengyeosunsa and Three Rich Houses that Repairs Soongrim Templ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신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1년 8월 16일 - 「숭림사를 중창한 행여 선사와 삼 부잣집」 지광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7년 - 「숭림사를 중창한 행여 선사와 삼 부잣집」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5-13 전라북도 익산시 편에 수록
관련 지명 숭림사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송천리 5]지도보기
채록지 송천리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행여 선사
모티프 유형 기복 신앙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에 전하여 오는 숭림사와 함라 지역의 세 부잣집에 관한 설화.

[개설]

「숭림사를 중창한 행여 선사와 삼 부잣집」숭림사(崇林寺)에서 신도들과 승려가 함께 계를 만들어 사찰의 살림을 꾸려 갔으며 함라 지역의 세 부자가 사찰에 거액을 후원하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숭림사를 중창한 행여 선사와 삼 부잣집」은 2011년 8월 16일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에서 숭림사의 주지 지광(智光)에게서 채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5-13 전라북도 익산시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불교를 억압한 억불정책(抑佛政策)을 쓴 조선 시대에도 불교가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신도들의 노력과 희생 덕이었다. 승려와 신도들이 계를 조직하는 등 사찰을 가꾸고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하였다.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큰 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왕부터 일반 백성까지 불교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불교라는 종교의 저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숭림사 역시 신도들이 계를 조직하여 절의 살림을 꾸려 나갔다. 그리고 함라 지역의 세 부자 역시 숭림사에 기부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숭림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은 행여 선사(行如禪師)이다. 행여 선사는 고려 시대 사람이자 숭림사 중창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기와에 행여 선사의 법명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숭림사를 중창한 행여 선사와 삼 부잣집」은 조선 시대에 승려와 신도가 절을 유지하는 데 함께 힘을 쏟았으며,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불교에 의지하였다는 내용으로 우리 민족과 불교의 관련성을 말하여 주고 있다. 「숭림사를 중창한 행여 선사와 삼 부잣집」은 불교의 ‘민간신앙’ 및 ‘기복신앙’의 성격을 말하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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