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422
한자 益山府院君李文忠公挽詞
영어공식명칭 Iksanbuwongunimunchunggongmans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박세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347년 - 이숭인 출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365년 - 이공수를 익산부원군에 봉함.
저자 몰년 시기/일시 1392년 - 이숭인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404년 -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 『도은집』 2권 ‘시(詩)’에 수록
배경 지역 익산시 - 전라북도 익산시
성격 한시
작가 이숭인

[정의]

고려 후기에 이숭인이 익산부원군 이공수를 위하여 지은 만시.

[개설]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益山府院君李文忠公挽詞)」는 고려 후기의 학자인 이숭인(李崇仁)[1347~1392]이 이공수(李公遂)[1308~1366]를 추모하며 지은 만시(輓詩)이다. 이공수의 본관은 전라북도 익산이며, ‘문충(文忠)’은 이공수의 시호이다. 이공수는 고려 왕실에 끼친 공이 커서 1365년(공민왕 14)에 이공수의 관향을 따라 ‘익산부원군(益山府院君)’에 봉하여졌고, 죽은 뒤에는 1376년(우왕 2)에 공민왕(恭愍王)[1330~1374]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만시의 작가인 이숭인의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이며, 문집으로는 『도은집(陶隱集)』[1404]이 있다. 이숭인은 고려 후기에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릴 만큼 학문과 시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조선 개국 후에 정도전(鄭道傳)[1342~1398] 일파에게 죽임을 당하며 생을 마쳤다.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이공수의 충절을 기리고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

[구성]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는 태(台), 회(回), 괴(瑰), 래(哀)를 운자로 쓰는 오언율시 형식이다. 시의 1구부터 4구까지는 이공수의 행적을 예찬하는 내용이고, 5구부터 8구까지는 이공수의 죽음에 대한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내용]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는 『도은집』 2권 ‘시(詩)’에 수록되어 있다.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에는 ‘전련은 갑진 연간[1364, 공민왕 13]에 원나라의 서울에 머무르며 있었던 일[前聯 甲辰年間留都事]’을 부기(附記)로 달아 놓았다. 전련은 3구와 4구를 가리킨다. 이공수가 공민왕의 복위를 위하여 표문(表文)을 가지고 연경에 가서, 기황후(奇皇后)와 원나라 황실을 설득하며 끝까지 충절을 굳게 지킨 일을 말한 것이다. 공민왕이 반원(反元)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奇轍) 등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최유(崔儒) 등이 기황후의 원망을 이용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충선왕(忠宣王)[1275~1325]의 셋째 아들인 덕흥군(德興君)을 고려 국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공수가 공민왕의 명으로 원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제념동민강대재(帝念東民降大才)[상제가 동쪽의 백성을 생각하여 뛰어난 인물을 내렸으니]

역양화질도삼태(歷揚華秩到三台)[화려한 벼슬 두루 거쳐 정승에 이르렀다네]

충심갱여간위고(忠心更與艱危固)[충심은 위태로움 속에서 더욱 견고하여지고]

성절난장세리회(盛節難將勢利回)[성절은 권세와 이익으로 돌려세우기 어렵다네]

총의은유조정내(摠擬憖遺調鼎鼐)[모두들 원로를 남겨 정내를 조정하리라 생각하였는데]

하지부조몽경괴(何知不弔夢瓊瑰)[어찌 하늘이 구슬 먹는 꿈을 꾸게 할 줄 알았으리오]

종금수시경륜수(從今誰是經綸手)[지금부터 누가 경륜의 솜씨 부릴 것이오]

집불나감위국애(執紼那堪爲國哀)[상엿줄 잡고서 어찌 나라 위한 슬픔을 견디리]

[특징]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는 5구와 6구에서 『시경(詩經)』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고사를 전고로 활용하였다. 5구의 ‘은유(憖遺)’는 『시경』 ‘소아(小雅)’ 편 「시월지교(十月之交)」 시의 “한 노인도 남겨 두지 않아 우리도 왕을 지키지 못하게 하네[不憖遺一老俾守我王]”라는 시구에서 나왔다. 대체로 ‘한 노인’은 경륜이 높은 재상이나 대신을 의미하는데,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에서는 이공수를 가리킨다. 또한 같은 구의 ‘정내(鼎鼐)’라는 시어는 『춘추좌씨전』 애공(哀公) 16년 조에 나오는 말이며, 재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정내를 조정하리라’는 말은 여러 양념을 잘 섞어서 좋은 맛을 내듯이, 재상의 지위에서 나라를 잘 다스린다는 뜻이다. 6구의 ‘구슬 먹는 꿈’은 『춘추좌씨전』 성공(成公) 17년 조의 고사와 관련이 있다. ‘성백(聲伯)’이라는 인물이 경괴(瓊瑰), 곧 옥구슬을 삼키는 꿈을 꾼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고사가 나온다. 「익산부원군이문충공만사」의 ‘구슬 먹는 꿈’은 이공수의 죽음을 상징한다.

[참고문헌]
  • 『도은집(陶隱集)』
  •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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