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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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啓學 |
영어음역 | Gwon Gyehak |
이칭/별칭 | 성집(聖集),죽암(竹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호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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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권득형(權得衡) |
형 | 권계징(權啓徵) |
출신지 | 강릉 |
성별 | 남 |
생년 | 1716년 |
몰년 | 미상 |
본관 | 안동(安東) |
대표관직 | 부사직 겸 춘추시강원문학(副司職 兼 春秋侍講院文學)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성집(聖集), 호는 죽암(竹岩). 참판인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윤재(權允載)이고 아버지는 효자인 권득형(權得衡)이다.
[생애]
1747년(영조 23)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부사직 겸 춘추시강원문학(副司職 兼 春秋侍講院文學)을 지냈다. 1781년에 기후가 고르지 못하여 재앙이 생겼을 때에 정조(正祖)가 구언(求言)의 교지를 내리자 권계학은 일곱 가지 조목의 상소를 올렸다. 그 후 정조는 특별히 관동 지방의 삼(蔘)에 대한 폐단을 덜어 주라는 조서를 내렸다.
[학문과 사상]
일찍이 지암(止菴) 김양행(金亮行), 역천(櫟川) 송명흠(宋明欽)과 더불어 도리(道理)로써 교류하였고 심성이기제설(心性理氣諸說)을 지어 심오한 이치를 밝혔으며 호해(湖海)로 물러나 ‘환호(喚皓)’라고 하는 당(堂)의 이름을 지었는데 여러 재상들이 읊은 시문이 유고(遺稿)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