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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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德璋 |
영어음역 | Kim Deokjang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호 |
[정의]
조선 중기의 효자.
[가계]
김덕장(金德璋)은 명주군왕 김주원의 후손으로 1550년(명종 5년)에 강릉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무공랑행평강훈도(務功郞行平康訓導)였던 김덕장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이 병석에 들었을 때는 단 한 번도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고, 아버지가 위독했을 때 손가락을 끊어 생피를 올리기도 했다. 부친상을 당했을 때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우애가 남달리 두터워 동생에게는 좋은 논밭을 갈라주고 조석으로 동생 집을 보살폈다. 1500년대 관동대기근(關東大饑饉) 때에는 돈과 곡식으로 마을 사람들을 구휼하여 칭송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영의정을 지낸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의 천거로 1590년(선조 23)에 정려가 내려졌다. 선조는 정려를 내림과 동시에 김덕장의 가호(家號)로 효우당(孝友堂)이란 액자를 하사하고 김덕장이 살던 마을을 효자리(孝子里)라 부르도록 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비롯하여 양봉래 등 대학자들이 「효우당시(孝友堂詩)」를 지어 그를 추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