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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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之芳 |
영어음역 | Yi Jib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생애]
이지방(李之芳)은 1496년(연산군 2)에 무사 장정(張珽)·이원종(李元宗) 등과 함께 서정장수(西征將帥)에 임명되었다. 후에 종성·회령의 부사, 의주목사 등을 지내고, 1516년(중종 11)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듬해 왕비 윤씨(尹氏)의 책봉에 대한 주청사가 명나라에 파견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4년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재직할 때에 삼둔(三屯)의 야인을 구축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오히려 대간과 의금부에서 탄핵되어 파직당하였다. 그해에 다시 복직되었다. 1528년에는 명나라의 황후가 죽자 진위사(陳慰使) 이봉(李芃)과 함께 진향사(進香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가던 도중에 행산역(杏山驛)에서 발병하여 되돌아왔으나 무단히 돌아왔다는 혐의를 받아 남포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병으로 돌아온 것이 밝혀지자 풀려나온 뒤 1531년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활동사항]
중종조에 여러 번 북문 수위로 있었으며,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경외하며 따랐다. 중종 때 속길(束吉)을 정벌하기 위해 이지방을 초토사(招討使)에 임명하자 조광조(趙光祖)가 속임수가 있을 것이라며 극력 저지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 팔도병사(八道兵使)를 역임하면서도 집에는 재산이 없이 청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