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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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宗溟 |
영어음역 | Jeong Jongmyeong |
이칭/별칭 | 사조(士朝),화곡(華谷),벽은(薛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호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조(士朝), 호는 화곡(華谷)·벽은(薛隱). 아버지는 좌의정 인성부원군(左議政寅城府院君) 정철(鄭澈)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류강정(柳强頂)의 딸이다.
[활동사항]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92년 7월 의주행재소에서 실시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이 되었다. 인조가 즉위하기 전 20여 년에 걸쳐 아버지인 정철에 대한 선조의 혐오와 동인(東人)과 대북(大北)의 박해를 받아 벼슬살이를 할 수 없었음은 물론 생명이 위협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1623년(인조 1) 성균관 직강으로 복직되고, 이어 사도시정(司䆃寺正), 사헌부 집의, 사복시정, 의정부 사인, 홍문관 교리, 세자시강원 보덕 등을 지냈다. 1626년(인조 4)에 강릉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가 같은 해 임지에서 죽었다.
[저술]
『송강유고(松江遺稿)』의 부록에 실려 있는 「백씨유고(伯氏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