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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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云仡 |
영어음역 | Jo Unheu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평장사 조맹(趙孟)의 31대손이다.
[생애]
조운흘(趙云仡)은 이인복(李仁復)의 문인이며, 1357년(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었다. 합문사인(閤門舍人)을 거쳐서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에 오르고, 1390년(공양왕 2)에는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1392년 조선 개국 후에 강릉부사로 제수되었으나 이듬해 칭병으로 사직하고, 광주로 내려갔다가 다시 검교정당문학(檢校政堂文學)이 되었다. 그 뒤로 관직에서 떠나 여생을 보내다가 스스로 묘지를 짓고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강릉부사를 지낼 때 청렴결백하였으며 공명정대하여 백성들이 잘 따랐다.
[저술]
저서로는 『석간집(石磵集)』이 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작품]
「제구월산소암(題九月山小庵)」, 「송춘일별인(送春日別人)」 등 5수의 칠언절구가 『동문선(東文選)』에 전한다.
[상훈과 추모]
강릉의 주민들이 조운흘을 흠모하여 생사당(生祠堂)을 세우고 제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