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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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注文津武裝間諜事件 |
영어음역 | Jumunjin Mujang Gancheop Sageon |
영어의미역 | Jumunjin NK Armed Agents Incid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리 3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인용 |
[정의]
1969년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지역에 침투한 무장간첩 토벌 사건.
[개설]
1969년 3월 주문진에 침투한 공비들이 공작을 마치고 주문진 앞 해상에서 도주하려는 것을 예비군과 군경이 사격하여 보트를 침몰시키고 공비 모두를 익사 또는 사살하였다.
[역사적 배경]
1960년대 말경에는 북한 내 지도부가 무장 게릴라세력을 대량 남파한 시기이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1968년 1월에 31명의 무장 게릴라가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남하한 1·21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68년 2월 7일 경전선의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250만 재향군인을 무장시켜, 온 국민이 무장공비를 격퇴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 육군본부에 예비군부가 만들어지고, 각의에서 향토예비군설치법시행령이 통과되고, 전국의 경찰서나 구청에는 예비군 본부가 설치되었다.
1968년 1월 23일에는 원산 앞바다에서 첩보활동 중 미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의해 나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한 1969년 11월 약 90명의 무장 게릴라가 경제혼란과 산업시설 파괴를 목표로 울진·삼척에 남하하는 등 남북 간에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다.
[목적]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에 침투하여 공작활동을 벌이고 도주하는 간첩을 소탕하기 위한 것이었다.
[발단]
1969년 3월 16일 자정이 지난 무렵 무장간첩 6명이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읍 소재 강남여인숙에 침입, 방첩대원이라 사칭하고 투숙자 9명의 주민등록증 4매, 승선증 1매, 공무원 신분증 1매, 숙박부 1권을 탈취하여 갔다.
그 후 1시 20분경 무장간첩 중 4명이 육군대위, 중사, 병장복장과 사복차림을 하고 강남여인숙으로부터 800m 정도 떨어진 전투경찰대 주문진 선박통제소에 침입하여 당시 근무 교대 중이던 206전투경찰대 소속 순경 2명과 사환 1명을 인질로 삼았다. 그 후 간첩들은 통제소에 비치된 무전기와 라디오를 파괴한 후 책상 밑에 시한폭탄을 장치하고 전원 방파제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1시 40분경 어선통제소에 결박당해 있던 사환의 신고로 시한폭탄을 제거하였고, 무장간첩들에게 끌려가던 순경도 탈출하였다.
[경과]
1969년 3월 19일 1시 40분경 무장간첩 출현 신고를 접한 주문진지서장은 경찰관과 예비군을 비상소집하여 도주로를 차단하고 주변을 수색하였다. 또한 순찰근무를 마치고 어선통제소로 돌아온 두 명의 순경이 방파제 쪽으로 출동하였다. 이와 동시에 신고를 접한 순경과 군인들이 방파제로 출격하였고, 아침 8시 30분경 주문진 앞 해상에 떠 있는 고무보트를 추격하여 집중 사격하였다.
[결과]
206전투경찰대 염관수 순경이 순직하였고, 민간이 1명이 피살되었으며, 이웅재 순경과 민간이 2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전과로는 무장간첩 9명 사살, 시한폭탄·카빈·기관단총·수류탄 등을 노획하였다.
[의의와 평가]
간첩모선을 타고 남하하여 공작을 마치고 고무보트로 돌아가려던 무장간첩들을 예비군과 군경이 합동으로 토벌한 사건으로, 예비군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 한편 1960년대 말 북한의 남침야욕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