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7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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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西良 |
영어음역 | Haseoryang |
이칭/별칭 | 하슬라,철국,예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최호 |
[정의]
강릉의 옛 지명.
[명칭유래]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명주(溟州)[현재의 강릉]는 본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인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라고 하여 이 지역이 고구려의 지명으로 하서량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형성]
대체로 이 지역은 한(漢) 무제(武帝)가 고조선을 소멸시킨 후에는 임둔(臨屯)에, 그리고 그 후에는 동부도위(東部都尉)에 속하였다. 그 뒤 다시 독립 상태로 되었다가 313년(미천왕 14)에는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다.
[변천]
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하서량[또는 하슬라]을 둘러싸고 남진하는 고구려와 북진하는 신라 간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 결과 처음 고구려에 속하였던 이 지역은 550년(진흥왕 14)에는 신라 영토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이 지역은 신라의 동북 국경지대로서 북쪽의 고구려나 말갈(靺鞨)의 세력과 자주 충돌을 일으킨 곳이었다.
[관련기록]
『삼국사기 지리지』 권35 「명주조」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명주(溟州)는 본래 고구려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何瑟羅)라고도 썼다."이었는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 가탐(賈耽)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 이르기를 "지금 신라의 북쪽 경계인 명주(溟州)는 대개 예(濊)의 옛 나라였다."라고 하였으니, 전사(前史)에서 부여(扶餘)를 예의 땅이라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 선덕왕 때에 소경(小京)으로 삼고 사신(仕臣)을 두었다. 태종왕 5년, 당나라 현경(顯慶) 3년(658)에 하슬라 땅이 말갈에 연접하였다고 하여, 경(京)을 폐지하고 주(州)로 삼아 군주(軍主)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경덕왕 16년(757)에 명주(溟州)로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영현(領縣)이 넷이었다. 정선현(旌善縣)은 본래 고구려 잉매현(仍買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동(棟)이라고도 썼다. 본래 고구려 속토현(束吐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지산현(支山縣)은 본래 고구려의 현(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그대로 썼다. 지금[고려]의 연곡현(連谷縣)이다. 동산현(洞山縣)은 본래 고구려 혈산현(穴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溟州 本高句麗河西良一作何瑟羅 後屬新羅 賈耽古今郡國志云 "今新羅北界溟州 蓋濊之古國" 前史以扶餘爲濊地 蓋誤 善德王時爲小京 置仕臣 太宗王五年唐顯慶三年 以何瑟羅地連靺鞨 罷京爲州 置軍主以鎭之 景德王十六年改爲溟州 今因之 領縣四 旌善縣 本高句麗仍買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一作棟縣 本高句麗束吐縣 景德王改名 今未詳 支山縣 本高句麗縣 景德王因之 今連谷縣 洞山縣 本高句麗穴山縣 景德王改名 今因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