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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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軒 |
영어음역 | Ham H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대길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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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함좌무(咸佐武) |
어머니 | 강릉최씨 |
출신지 | 강릉 |
성별 | 남 |
생년 | 1508년 |
몰년 | 미상 |
본관 | 강릉(江陵) |
대표관직 | 예빈시정(禮賓寺正) |
[정의]
조선 중기 강릉에서 교수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가중(可中), 호는 칠봉(七峰).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정평공(貞平公) 함부림(咸傅霖)의 5세손이며, 강릉 성산(城山) 건금리(建金里)에서 아버지인 부호군 함좌무(咸佐武)와 어머니 강릉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531년(중종 26)에 24세의 나이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이황(李滉)과 동학하면서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1534년에는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후 간성군수(杆城郡守)로 부임하여 향교를 이전하고 명륜당을 수축하는 등 교육진흥에도 힘썼다.
1552년(명종 7)에는 예빈시정(禮賓寺正)으로 있을 때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이 되어 연경(燕京)에 다녀온 후 이듬해에 이천부사(伊川府使)를 역임하였다. 1562년에는 삼척부사를 지냈으며, 재임 중 관리들의 기강을 확립하고 백성들을 구휼하여 치적을 남겼다.
이후 병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 강릉의 교수(敎授)로 재임하는 동안 풍속이 세속에 물들어 인재배출이 옛날과 같지 않음을 한스러워하여 지역 유지들과 서원 건립을 주도하였다. 지역 유림이었던 최수장·최운원(崔雲遠)·최운우(崔雲遇) 등과 이전에 교수를 지낸 최덕령(崔德岺), 진사 권대균(權大均), 생원 심엄(沈淹)과 함께 구산(邱山)에 터를 정하고, 1566년에는 강원도관찰사 윤인서(尹仁恕), 강릉부사 홍춘년(洪春年)과 상의하여 오봉서원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올 때 가져온 공자(孔子)의 진상을 비치하여 추모하면서 후진을 가르쳤다고 한다.
[저술]
저서로 『칠봉문집(七峰文集)』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