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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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筬 |
영어음역 | Heo Seong |
이칭/별칭 | 공언(功彦),악록(岳麓),산전(山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호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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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허엽(許曄) |
아우 | 허봉(許篈)|허균(許筠)|허난설헌(許蘭說軒) |
성별 | 남 |
생년 | 1548년(명종 3) |
몰년 | 1612년(광해군 4) |
본관 | 양천 |
추증 | 찬성(贊成) |
대표관직 | 이조판서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양천.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의 아들이고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의 형이며, 허난설헌(許蘭說軒)의 오빠이다.
[생애]
1568년(선조 1)에 생원이 되고, 1583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0년 전적(典籍)으로서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이 되어 정사 황윤길(黃允吉), 부사 김성일(金誠一)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조좌랑으로 강원도 소모어사(召募御使)를 자청하여 군병모집에 진력하였다. 이어 정언·헌납·이조좌랑·응교·집의를 거쳐, 1594년 이조참의로 승진되었으며, 1595년 대사성·대사간·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이어 이조참판을 지내고 전라도 안찰사로 나갔다가, 예조와 병조의 판서에 제수되었고 그 뒤 이조판서를 지냈다. 1607년 선조의 유교(遺敎)를 받게 되어 세인들이 고명칠신(顧命七臣)이라 칭하게 되었다.
[학문과 사상]
유희춘(柳希春)의 문인으로 남명학파(南冥學派)에 속한다. 학문과 덕망으로 사림의 촉망을 받았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동생 허봉(許篈)과 허균(許筠) 및 여동생 허난설헌(許蘭說軒) 등과 함께 당시 이름난 문장가였다. 양천허씨 5문장으로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 시비(詩碑)가 있다.
[저술]
문집으로 『악록집(岳麓集)』이 있다.
[작품]
허엽 신도비에 필적이 남아 있다.
[묘소]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맹2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찬성(贊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