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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릉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릉의 독립운동은 영동 지방에서의 의병 활동의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을미의병 당시 민용호(閔龍鎬)에 의해 강릉에 설립된 관동구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儀所)는 영동 지방 전체를 활동무대로 강릉의 대표적인 유림인 권인규(權仁圭)[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의 지원을 받으면서 전국 최대의 규모로 일제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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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출신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덕선(姜德善)은 강릉농업학교 독서회에 참여하여 일제 식민교육정책에 반대하고, 독립쟁취를 위한 애국 전단을 붙이면서 백성들의 민족적 각성을 촉진한 독립운동가이다. 강릉농업학교 1회 학생으로 동맹휴학을 주도한 혐의로 퇴학되었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회원이다. 1930년 5월 1일 강릉군 옥천동(玉川洞) 권오훈(權五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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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강몽호(姜夢虎)는 일제 강점기 공산당 청년 동맹 조직과 농민 조합을 결성하여 농촌 사회의 권익 보호와 야학을 통한 농민 계몽을 주도하였다. 강몽호는 1903년(고종 40) 6월 7일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1926년 강릉의 수선 강습소(修繕講習所)를 졸업한 뒤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 운동과 농민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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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청계(淸溪), 또 다른 이름으로 쌍라(雙羅)·쌍희(雙喜)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을미 의병으로 활약하였던 권인규(權仁圭)이며, 아버지는 후기 의병전에서 활약하였던 권종해(權鍾海)이다. 권기수(權基洙)는 1893년(고종 30)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였다. 의병전에서 활약하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행적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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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출신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북경대학을 졸업하였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회원, 강릉농민동맹 회원 그리고 가두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다. 1930년 5월 1일 강릉군[지금의 강릉시] 옥천동(玉川洞) 자택에서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는 사회과학 및 일반서적을 윤독하여 교양을 높이고 일제 식민교육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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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강릉 출신의 의병. 권익현(權益顯)은 강릉 출신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895년(고종 32)부터 1896년(고종 33)까지 민용호(閔龍鎬) 의진에서 5영도 총독(五營都總督) 및 소모사(召募使)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개항장인 원산 공격을 주도하였다. 권익현은 1845년(헌종 11) 8월 17일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을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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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강릉 출신의 의병장. 권인규(權仁圭)는 저명한 유학자로서 강릉 유림의 지도자였다. 본관은 안동, 호는 소은(巢隱), 또 다른 이름은 인규(仁奎)이다. 아들 권종해(權鐘海), 손자 권기수(權基洙)와 더불어 3대가 의병 운동에 투신한 의병 운동 사상 두드러진 가문이다. 권인규는 1843년(헌종 9)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경기도 여주 일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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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태종(權泰鍾)은 1908년(순종 2)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1930년대 강릉 지방 농민 조합 운동은 강익선(姜益善)과 권인갑(權麟甲)이 주도하였다. 권태종은 중국 베이징에서 온 권인갑의 권유로 강릉 공작 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1933년 6월 강익선의 권유로 강릉 공산 청년 동맹 준비 위원회에 가입하였다. 이후 강릉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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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릉농업학교 독서회에 참여하여 일제 식민교육정책에 반대하는 등 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렀던 독립운동가이다. 강릉농업학교 3학년 때 동맹휴학을 주도한 혐의로 퇴학되었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회원이었다. 1930년 5월 1일 강릉군 옥천동(玉川洞) 권오훈(權五勳)의 집에서 결성된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는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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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갑(金成甲)은 광복군 제2 지대에 입대한 후 1945년 8월 미국 정보기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즉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 정보국 정보 파괴반을 수료하였다. 국내 정진군 강원도반 제2조에 편성되었으나 광복을 맞이하여 다음 해 6월 귀국하였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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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실광(金實光)은 1895년(고종 32)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1시경 영해읍 장날을 이용하여 남효직(南孝直)·남여명(南汝明)·정규하(丁奎河) 등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성내동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이끌던 김실광은 경찰 주재소로 들어가 독립 만세를 부르라고 위협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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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옥(金永玉)은 1869년(고종 6)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1일 홍천군 홍천면에서 기독교인 차봉철(車奉哲)·서상우(徐相祐), 천도교인 오창섭(吳昌燮) 등이 주도하는 독립 만세 시위 계획에 동참하였다. 김영옥 등은 홍천-인제 간 도로 공사에 주민 다수가 동원되는 기회를 이용하여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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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안국(安國). 할아버지는 김을후(金乙侯)이고 아버지는 김근(金墐)이며,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465년(세조1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72년(성종 3)에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에 합격하고 출사하였다. 교서정자(校書正字)를 시작으로 전중(殿中)을 지냈으며, 재주가 문무를 겸하였으므로 영안북도평사(永安北道評事)에 제수되었고 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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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출신의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2일 강릉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2일 강릉 장날을 이용한 만세운동에서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 등 6명과 함께 아침부터 12시경까지 약 1백 매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을 제작·배포하였다. 장날에 모인 시위군중 수백 명을 규합하여 경찰서로 향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이미 증가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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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강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복재(復齋), 또 다른 이름으로 진호(晉鎬)라고도 하였다. 민용호(閔龍鎬)는 1869년(고종 6)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경기도 여주에서 거병하였다. 병력을 이끌고 원주·평창·진부를 거쳐 1896년(고종 33) 1월 강릉에 진출한 민용호는 영동 일대 의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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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지역의 독립운동가. 유년 시절 한문을 배웠으며 초당의숙[영어학교]에서 수학하며 신문학을 익혔다.강릉청년회 지도자, 초당리 청년회 지도자, 창동회 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4일 강원도 강릉군 강릉면 남대천(南大川)에서 보수축(洑修築) 공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농민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태(笞) 90대를 언도받았다. 1995년 대통령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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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국권수호에 앞장 선 의병. 1907년 김용상(金龍商)의 휘하에 들어가 인제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8년 3월에는 김용상으로부터 의병 모집 임무를 부여받고 횡성군 일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17일 경성 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流刑) 7년을 언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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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호는 몽양(夢陽).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하였다.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한 후 1900년 배재학당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흥화학교(興化學校)로 전학했으며, 1902년 관립우체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에 평양장로교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일본 군호를 안 쓴다는 이유로 강릉으로 퇴거 명령을 받았다. 1913년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南京) 진링대학(金陵大學)에 입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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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염재근(廉在根)의 정확한 생몰년은 파악할 수 없다. 1930년대 항일학생운동을 하였다. 1932년 강릉농업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 강릉농업학교 독서회(讀書會) 활동으로 퇴학당하였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는 1930년에 처음 결성되었으며 일본인 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운동을 펼치다가 주동 학생들이 퇴학당하면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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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강릉 출신의 의병. 우상옥(禹相玉)은 1876년(고종 13)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후 8월 15일 정봉준(鄭奉俊) 의진의 종사원으로 동료 의병 700여 명과 함께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암(七星岩)에서 일본군 80여 명과 교전하였다. 또 경기도 지평 삼산동(三山洞)에서 일본군 300여 명과 3일간 교전하였다. 충청북도 목계(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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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강릉 출신의 의병장. 윤동섭(尹東涉)은 1885년(고종 22)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대한 제국 개성 진위대(開城鎭衛隊) 병사로 활약하였다. 1907년(순종 1) 일본이 강제로 군대를 해산하자 이듬해 4월 15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거병하여 함경남도 문천군과 고원군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4월 10일에는 문천군 순사 주재소를 급습하여 불태우고 일본군을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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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릉보통학교를 중퇴하였다. 1919년 강릉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알려져 퇴학을 당한 이후, 신문기자로서 활동하였다. 1927년 강릉철필단(江陵鐵筆團) 단장을 맡았고, 강릉 신문·잡지 기자로 조직된 보도단(報道團) 단장과 영동기자단 단장을 지냈다. 1919년 4월 1일 강릉보통학교 재학 중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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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2일에 강릉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전개하였던 만세시위 이후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이윤식은 시위 추진 본부를 자기 소유의 상점으로 옮기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시위준비를 주도하였다. 또한 1928년에 설립된 강릉공립농업학교의 개교를 위해 최재린(崔在麟)·박기동(朴基東)·조규대(曺圭大)·이한봉(李漢鳳) 등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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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이주삼(李柱三)은 1915년 3월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강릉 신리 노농 협의회(新里勞農協議會) 농무부(農務部)의 지도로 협의회에 가담하였다. 1932년 7월 최돈근(崔燉根)·최재철(崔在喆)·조병은(曺秉殷) 등과 함께 신리 적색 농민 조합(新里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한 후 동지 규합 및 지도를 담당하였다. 이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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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27년 12월 3일에 결성된 신간회 강릉지회의 부회장을 맡았고, 1930년 11월 9일 신간회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렸을 때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강릉 지역 중등교육기관의 설립을 위해 노력하여 1928년 7월 1일 영동 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강릉공립농업학교가 개교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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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강릉 출신의 의병. 정광칠은 1873년(고종 10)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순종 1)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정미 7조약’에 따라 군대가 해산되자 김성오(金成五) 의진에 가담하여 강릉·양양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김성오 의병장은 1907년 고종(高宗) 황제 강제 퇴위와 「정미 7조약」에 따른 군대 해산으로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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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원도 강릉시 정동면 난곡리에서 거주하며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7일에 만세운동을 벌이기 위하여 태극기 5백여 매를 미리 만들어 준비하던 중, 4월 6일 밤 경찰의 습격을 받았다. 그러나 다시 다음날 아침부터 태극기 약 1백여 매를 만들어 장터(현 강릉시 중앙로터리 광장)에 뿌리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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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27년에 신간회 강릉지회 상무간사를 맡았다. 1927년 8월 15일에 강릉유학생연합친목회에서 주최하여 강릉공회당(江陵公會堂)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학생운동의 사명’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고, 강원청년연맹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1927년 10월 5일 신간회 강릉지회 설치 추진위원으로 활동하여 같은 해 12월 3일 창립총회에서 상무간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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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에 거주하며 1919년 강릉 지역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2일 강릉 장날에 최선재(崔善在)·최선근(崔善根)·김진숙(金振淑)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배포하고 장날에 모인 시위군중 수백 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또한 4월 7일에 다시 만세운동을 계획하여 이날 아침부터 12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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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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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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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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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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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에 강릉 지역 협동조직체인 창동회와 야학회의 교사로 활동하던 최이집은 1919년 4월 최돈옥, 최진규(崔晋圭), 최선재(崔善在), 조대현(曺大鉉), 최선근(崔善根), 김진숙(金振淑), 정식화(鄭軾和), 최선호(崔善浩) 등과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여 1919년 4월 4일 전개된 만세운동에 주도자로서 참여하였다. 최이집을 비롯하여 창동회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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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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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창(洪順昌)은 1904년(고종 41)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양구의 매동 공립 소학교(梅東公立小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국사 시간에 개항기 항일 투쟁사와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의거를 강의하였다. 또한 한국 병탄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한국인 교원의 차별 대우를 비판하였으며, 일제의 창씨 개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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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릉 옥계 출신으로 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활동을 하였다. 1944년 11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초모공작, 첩보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1945년 2월에는 중화지구(中華地區) 공작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건국훈장(建國勳章) 애족장(愛族章)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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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강릉 출신의 의병. 호(號)는 국헌(菊軒)이다. 황청일(黃淸一)은 1850년(철종 1) 강원도 강릉시에서 태어났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의 비보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였고, 일제와 친일 정권에 의해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분노하여 토역 복수를 부르짖고 강릉에서 민용호(閔龍鎬) 의진에 참여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망의 위기임을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