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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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호 |
[정의]
전라북도 익산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개설]
익산은 해발 20~50m 내외의 구릉지와 곡간지, 해안 평탄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북쪽은 금강, 남쪽은 만경강이 위치하고 있어서 수로를 통하여 주변 지역과 활발한 문화교류를 실시하여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 따라서 익산은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의 활동이 확인되며 특히 한반도 청동기문화 교류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큰 강과 작은 하천이 고루 발달한 익산 지역은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금강 수계에 가까운 여산면 원수리 신막유적에서는 1만 5000년에서 1만 8000년 전에 형성된 문화층에서 몸돌과 찍개가 발견되었으며, 다송리·서두리·쌍정리 유적에서도 구석기 유물이 확인되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가 사용된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웅포리·신용리 갓점 유적이 있다. 웅포리 유적에서는 장방형 평면에 화덕자리가 있는 신석기 시대의 집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청동기의 발달과 준왕]
청동기 시대는 농경이 활발해지고 인구가 증가하며 대규모 마을이 형성된다. 익산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유적은 영등동·부송동·다송리·석천리 유적 등이다. 영등동 유적은 장방형, 방형, 원형 등 다양한 주거지가 발견되고, 아가리에 무늬가 새겨진 토기나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진 민무늬토기, 슴베가 있는 돌칼, 반달모양돌칼 등이 발견되었다.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에서 발견된 돌널무덤에서는 거친무늬거울과 관옥, 검은색으로 마연된 토기가, 용제동 이제유적의 널무덤에서는 청동검과 청동꺾창, 청동끌 등이 출토되었다.
익산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 등이 수습되는 등 다른 지역에 비하여 청동기의 출토 빈도가 높은데, 이를 고조선 준왕(準王)이 바다를 건너 익산 지역에 정착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그중 왕궁면 평장리에서 나온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대 유물인 전한경(前漢鏡)과 세형동검, 청동창, 청동꺾창 등의 청동기와 익산시 춘포면 신동리 널무덤에서 나온 세형동검과 쇠도끼, 쇠끌, 덧띠토기 등은 외부 집단의 이주를 보여 주는 증거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마한과 건마국]
익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정치체는 마한(馬韓)의 소국의 하나인 건마국(乾馬國)이다. 익산 지역에서 마한인의 생활 흔적은 장신리 유적에서 확인된 27기의 집터와 송학동 유적에서 확인된 다양한 토기와 불에 탄 쌀을 들 수 있다. 송학동에서는 유리구슬을 제작하는 데 사용한 거푸집과 토기 제작에 사용하는 도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익산의 마한 문화는 분구묘(墳丘墓)라는 무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분구묘는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파서 돌린 흔적이 특징으로, 영등동과 율촌리에서 낮은 분구와 도랑이 확인되었다. 간촌리 널무덤에서는 새를 본떠 만든 토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미륵산 일대의 낮은 구릉지대에서는 백제의 영역으로 편입된 뒤에도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묘제로 채택되어, 미륵산 일대의 낮은 구릉지대 지역만의 토착적인 무덤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마한의 한 소국이었던 건마국은 처음에는 고조선 준왕 세력을 대체하여 마한 연맹의 맹주를 자처하였지만 이후 그 지위를 목지국(目支國)에 내주었다. 또한, 백제가 고대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차 백제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