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생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047
한자 住生活
영어공식명칭 housing lif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정숙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지역민들이 살았던 전통 가옥의 형태 및 구조.

[개설]

익산 지역의 주생활은 전형적인 민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익산 지역의 평야지대라는 자연환경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었고, 주거 형태는 농촌 민가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일식 가옥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리역폭발사고’를 겪으며 판자집 촌이 아파트로 변모하였다.

[주거의 역사]

1. 마한 시대

마한의 특징적인 주거 형태를 살펴보면 30~40㎝ 정도 낮게 땅을 파내고, 방형·장형·장방형 구조에 4개의 기둥을 내부에 세운 수혈식 주거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보다 땅의 깊이가 낮아 백제 시대의 건물[지상]로 변화하는 중간단계로 볼 수 있다. 익산 지역은 주로 방향계 무주식 주거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송학동 유적[전라북도 익산시 송학동 520번지 일원], 장신리 유적[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장신리 72-3번지 일원], 사덕 유적[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구덕리 산 79-1]에서는 4주식과 무주식이 모두 나왔다.

2. 백제 시대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 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의 기록을 보면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문구를 찾을 수 있다. 이 문구는 위례성에 새로 지은 궁실의 모습이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으로, 이로써 세련미와 절제를 갖춘 백제 건축문화의 미의식을 말하여 준다. 그러나 기와를 얹은 왕궁(王宮)·관부(官府)·사원 등과는 달리 민가는 초옥(草屋)으로 지었다. 농촌 민가는 보통 3칸 또는 4칸의 구성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다. 3칸집은 부엌, 안방, 웃방이 연결지어 배치되고 방 앞에는 툇마루를 시설한다. 4칸집은 3칸집과 그 모습은 같지만 안방과 웃방 사이에 대청 또는 방 한 칸이 더 있는 것만 다르다.

3. 고려 시대~조선 시대

고려 초기 건축문화는 신라를 계승하였다고 한다. 고려 시대의 목조건축은 10동 미만[13세기 이후에 건립]의 사찰 건축이 남아 있지만, 석조건축인 석탑, 부도 등은 상당수가 남아 있다. 조선 초기의 건축물들은 학교 건축과 도시와 궁궐과 성곽, 성문이 중심을 이루었다. 건물은 규모가 법적으로 규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신분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조선 시대 건축 특징은 규모가 작고 검소하였으며, 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었다. 대표적으로는 숭례문, 홍화문, 남대문 등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익산의 조선 시대 후기 건축물인 여산동헌[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445-2]은 목조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팔각지붕의 형태이다. 이러한 배치를 따른 가옥이 가람 이병기 생가[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이다.

4. 근대 시대

일식 가옥이 많은 대장촌의 가옥, 황등의 가옥을 보면 조선 가옥에 비해 기초를 단단히 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80년이 지나도 구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익산 지역의 일식 가옥의 한 곳인 수리조합은 1906년 군량미 조달 등의 이유로 일제가 구한말 정부에 압력을 넣어 제정한 「수리조합 조례」에서 비롯되었다. 수리조합의 건축은 서양식인 르네상스의 팔라조 양식으로 부속 창고와 관사를 함께 건축하였다. 건물의 벽체는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세부적인 조적 수법을 사용하였다. 지붕은 맨사드 형이고 꺾임 트레스 위에 그물 잇기로 아연판을 덮었다.

또한 익산 춘포리 일본인 가옥을 보면 농업기술자인 에토가 1940년 경에 건축하였는데 팔작지붕 위에 일식기와를 올렸다. 이외에 익산 주현동 일본인 대교농장, 익산 춘포면 김성철 가옥, 이리역 관사촌 등에서도 일본 가옥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독특한 건축양식으로는 두동교회를 들 수 있는데, 1929년 ㄱ자형 평면의 한옥 교회로 함석지붕에 홑처마 우진각 형태를 하고 있다.

5. 현대시대

익산 지역의 현대 가옥은 근대의 기와지붕과 슬레이트 지붕, 함석지붕의 집, 그리고 현대식 아파트와 현대식의 구조를 갖춘 전원주택이 공존하고 있다. 도시 지역은 아파트 건축의 증가로 아파트 주거가 보편화되었지만, 시골은 일반 주거 형태로 기와지붕을 하고 있다. 1980년대의 슬레이트 지붕은 석면 제거를 이유로 함석지붕이나 기와지붕으로 교체하는 집이 많아졌지만, 인구의 감소로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빈집으로 남아 있어서 빠른 철거가 요구된다.

[가옥의 형태]

1. 전통 시대의 가옥

상류 주택은 가정생활의 전통적인 개념이나 사회 계급에 따른 배경이 주거 건축 구성에 영향을 미쳐 음양오행과 풍수지리에 의해 건축되었다.

가옥의 배치는 산을 등지고[북쪽] 앞은[남쪽] 넓게 터져 있고, 왼쪽에 강이 흐르는 곳을 택하여 주거의 중요한 부분을 남향(南向)과 동남향으로 놓고, 안채를 중심으로 배치하였다. 민가는 시대에 맞게 바뀌기 마련이지만 정형성(定型性)을 보이는 안채는 크게 변하지 않으나 주변의 부속채는 쓰임새에 맞게 변형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집 외부에 있던 변소의 위치를 바꾸거나 없애고, 변소 옆에 있던 헛간을 부엌 안으로 옮기거나 외양간이 사라지면서 창고로 개조하기도 한다.

가사규제(家舍規制)가 계속되었던 조선 전기는 신분 계급에 따라 주택의 형식과 규모가 제한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서민들이 궁전의 침전 건축(寢殿建築)과 상류 주택을 모방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 양반집의 배치를 따르고 있는 익산 이병기 선생 생가[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 김안균 가옥[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457]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김안균 가옥은 개화되는 과정에서 상류 주택의 전통가옥의 변모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2. 근대기의 가옥

익산은 일본 가옥이 많은데 그중에도 대창촌과 창인동, 평화동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황등, 함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일제가 우리의 식량을 얼마만큼 약탈하였는지 알 수 있는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춘포에 있는 김성철 가옥은 원래 호소카와 농장 주임관사인데 건물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일식 기와를 올렸으며 부섭지붕이 달려 있다. 평면은 전후면에 마루가 있고, 마루를 통하여 각 실로 연결된다. 마루 끝에는 유리 미세기문을 설치하였다. 방에는 본래 다다미가 깔려 있었으나 한국인이 살면서 온돌방으로 개조하였다. 집의 구성은 방 2개와 대청, 부엌으로 구성되었다.

1918년 일제 강점기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는 익산의 조해영 가옥[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473]은 같은 마을에 지어진 김안균 가옥[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3호,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457]과 비교하여 살펴볼 수 있다. 조해영 가옥은 일본 양식에 더 가깝다. 사랑채 전면에는 포차를 두었고 처마 끝에 처마 홈통과 빗물을 받는 선홈통까지 설치하였으며, 별채는 완전히 일본식으로 지었다.

포차를 둔 대표적인 예로는 왕릉 앞에 있는 정자각(丁字閣), 전주 경기전, 선암사 원통전과 흥국사 원통전이 있는데 이는 의례를 위한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반면 전통적인 한옥의 규범을 따르고 있는 김안균 가옥은 대문간에 있는 안채와 전정(前庭)을 가르는 벽이 반 칸 규모의 헛간이 늘어서 있는 구조로 기존 한옥에서 보여 주는 담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전정(前庭)벽체 지붕은 일본식 기와로 덮여 있어 일본풍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점을 제외하고는 집 전체가 한옥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3. 현대의 가옥

1980년대에는 면사무소에서 신청받아 재래식 주택이 양산되었다.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경에 일어난 이리역폭발사건은 익산시를 일거에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리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의 가옥 등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반경 1㎞ 이내의 가옥은 창문이 떨어져 나갔으며, 반경 8㎞ 이내의 유리창까지 파손되었다. 창인동은 거의 많은 주택이 무너졌고, 판자집이 밀집하여 있던 모현동은 60가구의 부락 하나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모현동 아파트 26개동이 완공되었으며, 현재까지 편리성을 추구한 아파트가 주거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의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은 마한 시대부터 전근대, 일제 강점기의 일본식 가옥, 근대식 한옥, 현대식 가옥이 서로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며, 지역사적으로,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ㄱ자형인 고패형으로 된 안채와 1자형인 사랑채, 고방채와 ‘승운정’이라는 모정 등 여러 건물로 되어 있는 조촐한 선비의 가옥인 가람 이병기 생가와 일본 가옥, 농촌 민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익산은 현재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다양한 주거 형태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익산시는 중요한 유적으로서 가옥과 한옥들을 잘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19년 현재에는 효(孝) 문화로 정착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함라한옥체험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효행 스테이 캠프도 같이 실시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어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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