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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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我石亭 |
영어공식명칭 | Asukjung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아리랑로 9-34[서고도리 87-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안선호 |
건립 시기/일시 | 1934년 - 아석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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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5월 30일 - 아석정 익산시 향토유적 제4호 지정 |
현 소재지 | 아석정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아리랑로 9-34[서고도리 87-1] |
성격 | 정자 |
양식 | 무익공 공포|겹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소병극 |
문화재 지정 번호 | 익산시 향토유적 제4호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자.
[개설]
아석정(我石亭)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행정마을에 살던 소진홍이 자신들의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터에 낡은 정자를 헐고 1934년에 다시 지은 정자이다.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희가 정사를 짓고 자연 속에서 은거하며 지은 시 중에 “거문고와 책을 벗한 지 40년, 어느덧 나도 천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네[琴書四十年 居然我泉石]”라는 구절이 있다. ‘아석정’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권오중, 송열, 이봉헌 등의 운문이 기록된 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를 지을 당시 아석정 앞의 개울은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며, 넓은 바위도 있어 쉬는 장소로 제격이었다고 한다. 아석정은 2002년 5월 30일 익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아석정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87-1에 있다. 금마면사무소 앞 사거리에서 미륵사지 방향으로 지방도722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왼쪽에 마한주유소가 나온다. 마한주유소 맞은편에 있는 작은 샛길로 들어서면 아석정이 있다.
[형태]
아석정은 거칠게 다듬은 장대석으로 낮은 기단을 조성한 후 건물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잘 다듬은 원형 주춧돌을 사용하였으며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마루는 땅에서 비교적 높게 띄워 올렸으며 마루 하부를 받치기 위하여 ‘ㅅ’자형으로 가새를 설치하였다. 정면에는 ‘亞’자형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나머지 삼면에는 머름대를 설치하고 궁창에 풍혈[바람구멍]을 냈다. 공포는 무익공 형식으로 쇠서 전면은 직절하고 보아지는 경사지게 깎았다. 장여와 창방 사이에는 소로를 끼워 장식성을 높였다. 도리는 원형도리를 사용하였으며 철근으로 된 꺾쇠를 사용하여 기둥과 도리를 고정시켰다. 지붕 가구는 5량 구조이다. 기둥 위에 대들보를 걸었고 대들보 위에는 대들보와 거의 맞닿도록 종보와 충량을 반턱맞춤으로 결구하고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지붕은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현황]
아석정은 금마도토성[전라북도 기념물 제70호]이 있는 산 중턱에서 남서향하고 있다. 정자의 남쪽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며 서계마을이 있다. 아석정 옆에는 충신 소행진(蘇行震) 등 진주소씨 문중 정려각이 있다.
[의의와 평가]
아석정은 전통 목조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일제 강점기 당시의 새로운 건축 수법이 반영되어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