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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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山集 |
영어공식명칭 | Insanjip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용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봉곤 |
간행 시기/일시 | 1935년 - 『인산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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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
간행처 | 화산재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
성격 | 문집 |
저자 | 소휘면 |
편자 | 소진형 |
권책 | 17권 8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30.8×19.8㎝ |
어미 | 상하향2엽 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 |
권수제 | 인산선생문집 |
판심제 | 인산집 |
[정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후기 문인 소휘면의 문집.
[개설]
소휘면(蘇輝冕)[1814~1889]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1776~1852]의 제자로서 문장과 경학에 뛰어났다. 벼슬은 사헌부지평에 이르렀으나 일절 취임하지 않고 학문과 강학 활동에 전념하였다. 문집의 양은 17권 8책에 달하며, 권1의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장이다. 성리설과 경학에 뛰어난 작품이 많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소휘면은 자는 송우(松友), 호는 인산(仁山)이며 전라도 익산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조부인 소수구(蘇洙榘)에게서 수학하였고, 20세에 조부의 명으로 홍직필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3년 간 홍직필 문하에서 사서(四書), 「근사록(近思錄)」, 「가례(家禮)」를 철저히 공부한 이후 도학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홍직필 문하의 뛰어난 학자 다섯 명을 일컫는 ‘매문오현(梅門五賢)’ 중 한 명으로, 1852년(철종 3) 스승인 홍직필이 타계하자 1857년(철종 8)에 화장산방(華藏山房)에서 동문들과 함께 홍직필의 유고(遺稿)를 교정하여 1866년 『매산집』을 간행하였다. 이때 7대조 소두산의 문집 『월주집(月洲集)』도 함께 간행되었다.
소휘면은 1865년 만동묘 철폐에 반대하였고, 1872년부터는 전라도 전주부의 인천(仁川) 동산(東山)에 취락재(聚樂齋)를 짓고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인산선생(仁山先生)’이라고 불렸다. 1878년에는 전라우도 암행어사 어윤중(魚允中)이 별단으로 추천하였으며, 1881년에는 조정에서 경학(經學)으로 천거하여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 등에 제수되었으나, 일절 나아가지 않았다. 1882년에 사헌부지평이 제수되었으나 이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1884년 겨울에는 김평묵이 귀양에서 풀려 포천으로 올라가는 길에 방문해 함께 학문을 논하였다. 김평묵은 홍직필의 문인이었다가 나중에 이항로의 문인이 된 인물로서 개항기 기호 지방의 척사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소휘면은 1889년 타계하였다.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용순리에 있는 화산서원(華山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소휘면이 타계한 뒤, 손자 소진형(蘇鎭衡)[1850~1907]이 여러 문인들과 함께 글을 모았으나 문집을 내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이후 1935년 무렵 진주소씨의 제각인 화산재(華山齋)에서 익산 지역 진주소씨 선대 문집을 펴낼 때 목활자본으로 함께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17권 8책의 목활자본이다. 책의 사주(四周)에 두 개의 검은 선이 돌려진 사주 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은 31.7×15.7㎝, 10행 20자이며, 주는 쌍행이다. 어미는 상하향2엽 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며, 책의 크기는 30.8×19.8㎝이다.
[구성/내용]
17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앞머리에 전체 목차가 제시되어 있고, 책별로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의 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문장이다. 권1은 38개 주제의 시이다. 스승인 홍직필과 이별할 때의 시, 동문들과 홍직필의 유고를 교정하면서 읊은 차운시, 동문이나 지인들과 나눈 시가 대부분이다. 이항로의 심설을 비판한 시도 있다.
권2부터 권12까지는 277명에게 받은 서간문이다. 권2는 주로 스승인 홍직필, 송내희(宋來熙), 조병덕(趙秉悳)을 비롯해서 동문인 신응조(申應朝), 임헌회(任憲晦) 등과 성리설과 상장제례(喪葬祭禮)에 관하여 주고받은 편지이다. 권3은 김평묵(金平黙), 이응진(李應辰), 민주현(閔胄顯) 등 동문들과 주고받은 21편의 편지이다. 이후 부분도 주로 동문이나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인데, 권4에는 34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권5는 성리설과 상장례에 대해서 주고받은 글인데, 전우(田愚)[1841~1922]와 왕복한 편지가 있어서 눈길을 끈다. 권6은 42 편, 권7은 19 편이고 권8은 문인 안태국(安泰國) 등 11명에게 보낸 편지가 27편 수록되어 있다. 권9는 23편, 권10은 15편이며, 권11은 권헌수(權憲洙) 등 열 명에게 보낸 45편, 권12는 주로 저자와 관련된 소씨 문중에 보낸 편지 등 23편이 남아 있다.
권13은 열두 편의 잡저(雜著)이다. 주로 유학자의 학문 자세나 학교 규범, 인재 등용, 사서삼경 등의 경학이나 성리학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권14는 서(序) 20편, 기(記) 1편, 제(題) 2편, 설(說) 3편, 명(銘) 1편, 혼서(婚書) 2편, 고축(告祝) 3편이다. 권15는 제문 15편, 비(碑) 2편, 묘갈명 2편, 묘표 1편, 행장 3편, 행록 1편, 전(傳) 2편이다. 제문은 스승과 동문, 친척, 아들 소경규에게 보냈는데, 노비 영완(永完)을 위해 지은 제문도 있다. 양반이 노비를 위해서 제문을 지어 주는 일이 드문 일인데, 소휘면이 노비와 있었던 일화들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권16, 17은 부록(附錄)이다. 권16은 저자의 아들, 손자, 문인들과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권17은 손자 소지형이 지은 가장(家狀), 문인 권헌수가 지은 묘표, 문인 이사희(李思僖)가 지은 유사(遺事) 등이다.